[인사이드 코리아/피터 바돌로뮤]한옥은 과학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피터 바돌로뮤 왕립아시아학회 이사
피터 바돌로뮤 왕립아시아학회 이사
당신은 올해 여름처럼 비가 많이 내릴 때 한옥이 침수되거나 무너져 내리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예부터 한국의 전통가옥 건축가들은 한옥의 입지를 정할 때부터 폭우나 태풍을 막는 방법을 꼼꼼하게 따졌기 때문이다. 현대식 가옥들이 비에 휩쓸려 큰 피해를 보는 것과 얼마나 대조되는가. 필자는 서울에서 36년 동안 한옥에 살면서 지금껏 여러 태풍을 겪었다. 그때마다 한옥 바깥세상은 커다란 나무가 송두리째 쓰러지는 큰 혼란을 빚었지만 놀랍게도 한옥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그런데도 많은 한국 사람은 한옥을 과거 저개발시대의 잔재로 여기는 것 같다. 한옥을 원시적이고 후진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고도로 정제된 디자인과 훌륭한 시공기법을 지닌 한옥은 자랑스럽게 여겨 소중하게 보존해야 할 위대한 유산인데도 말이다.

한옥은 과학이다. 자연의 기(氣)를 고려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세에 자리 잡는다. 빗물이 흐르는 행로를 살펴 한옥 내부로 비가 흘러들지 않도록 한다. 집 지을 토양의 습도와 점성도 세심하게 조사해 나무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놓는 주춧돌 디자인을 결정한다. 한옥이 혹여 땅으로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수 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한국 건축의 지혜다.

한옥을 이루는 목재 부분에 습기가 차는 걸 막기 위해 한옥은 지반면(地盤面)으로부터 0.5∼1m 위의 석조 단상에 지어진다. 연중 바람의 속도와 방향도 주의 깊게 따져 지어졌기 때문에 비가 들이쳐 종이로 된 문을 적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붕 밑을 지탱하는 구조물인 서까래도 바람과 비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까래의 기능은 이뿐만이 아니다. 계절에 맞는 냉온 기능을 자동으로 작동한다. 여름엔 강렬한 태양빛을 막아 집 안을 서늘하게 해 주고 겨울에는 따뜻한 햇볕을 집 안에 오랫동안 들인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한옥의 비결에는 한옥 지붕과 외벽에 사용되는 진흙의 높은 점성도 있다. 진흙은 한옥 디자인의 미학적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단열재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한옥은 자연과 인간을 배려한 과학적, 실용주의적 디자인이다. 한옥은 정확한 풍향 계측을 바탕으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도 두루 고려했다. 그 결과 집이 들어앉는 형태가 ‘ㅡ’ ‘ㄱ’ ‘ㄷ’ ‘ㅁ’ 등으로 다양해졌다. 유교 전통에 따라 남자와 여자는 내외하고, 연장자일수록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좋은 입지의 방에 살았다.

온돌 시스템은 한옥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적 걸작이다. 한국의 옛 온돌은 삼국시대와 발해시대 유적에서 속속 발굴되고 있다. 궁궐에서부터 일반 서민의 가정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인 온돌 시스템은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건축의 독창적 결실이다. 고대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 벽면, 중국의 온돌 침대 등에 비슷한 설비가 있긴 했지만 마루 전체를 설비하는 한국 온돌에 비해 규모가 작았다. 온돌 마루는 보온뿐 아니라 한옥을 이루는 목재 부분이 썩지 않도록 습기를 막는 역할도 한다. 필자는 장마철에는 온돌 불을 때 습기를 없애곤 하는데 불과 나무 대여섯 조각으로 24시간 이상 집 안을 데울 수 있다. 또 부엌에 딸린 온돌 아궁이는 요리와 안방의 보온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한꺼번에 이뤄낸다. 아궁이를 이용해 요리를 할 때마다 부엌 옆에 딸린 안방은 같은 불로 자동적으로 데워지는 것이다. 아궁이는 한국의 사실상 첫 ‘에코 프렌들리’ 에너지 절감 설비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옛 한옥 디자인에는 이처럼 여러 과학적 요소가 보물처럼 담겨 있다. 한옥을 한국의 중요한 과학적 자산으로 조명해야 하는 이유다.

피터 바돌로뮤 왕립아시아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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