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며칠간은 그저 망연자실한 채 눈물로 보냈죠.”
그러기를 두달여. 어느날 한강변을 산책하던 이씨 부부는 “더이상 이렇게 지낼 수 없다. 뭔가 해야겠다”고 손을 맞잡았다.
남편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이씨는 창업을 하기로 했다.
초보사업자에게 맞는 아이템이 뭘까를 궁리하던 이씨는 신문에서 봐뒀던 빵집 ‘뚜레쥬르’를 떠올렸다. 제일제당에서 자사 명퇴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던 체인점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됐다는 기사를 읽고 마음이 끌리던 차였다.
마침 이씨가 사는 자양동에 신규 점포 한 군데가 비어 있었다. 지체하지 않고 바로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창업비용. 보증금 인테리어 물품비용 등을 합하니 1억원이 필요했다. 결국 어렵사리 마련한 집을 팔고 27평 전세로 옮겼다. 이삿짐을 싸던 남편은 눈물을 흘렸다.
창업절차는 의외로 간단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체인점이어서 지원체계가 잘 돼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제일제당 연수원에서 열흘간 훈련을 받으면서 수십가지 빵 이름을 외웠다. 지금은 70∼80가지나 되는 빵 이름이 술술 나온다.
하지만 첫 사업은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었다. 신경 쓸 게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몸무게가 한달만에 3, 4㎏ 빠졌다.
이씨는 스스로 “장사 체질은 아닌 것 같다”고 하지만 누가봐도 지금은 완전히 기반을 잡았다. 은행에 다닐 때 창구 직원으로 있으면서 ‘친절여왕’으로 뽑힐 만큼 서글서글한 성격이 큰 도움이 됐다. 손님 얼굴을 잘 기억하는 능력이라든가 빨리 계산하는 법 등은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었다.
“빵 가게에 손님으로 갈 때와 주인으로 있을 때가 너무 다르더라구요”
자신은 생전 빵값을 깍아본 적이 없는데 “깎아달라” “덤 하나 더 달라”는 손님을 만나자 어떻게 해야 할 지 당혹스러웠다.
지금은 손님 기분 좋게 하면서도 크게 손해 안보는 요령에 훤하다. 일단 가게에 들어선 손님은 절대로 빈손으로 안 나가게 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1천원에 1점씩 적립시켜주는 마일리지 카드도 반응이 좋다.
어느새 단골에게 주는 카드가 9백장이나 나갔다.
이씨는 특히 손님을 친구처럼 대해줘 편하게 찾는 주부 고객이 많다. 수입도 다행히 기대 이상으로 올라섰다. “남편이 직장생활 할 때 받던 것 이상은 된다”는 설명. 그러나 장사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내 사업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은행에서 일할 때보다 부담감이 훨씬 커요.”
개점 7개월 동안 가게에 안나간 날은 손가락으로 꼽아볼 정도. 한달에 두번씩 쉬는 날도 가게로 나가 청소를 하고 물건 정리를 해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새벽 1시 잠자리에 들 때는 통통 부은 다리를 의자에 올려 놓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앞서는 건 아이들 걱정.
“한참 엄마를 많이 찾을 나이인데 그러지 못해 속상해요.”
이씨는 그러면서도 “빨리 벌어서 다시 우리집을 사야죠”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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