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선 변신 자유자재
GM사에서는 92년 최고 경영자 로버트 스템펠회장이 사외이사들에게 쫓겨나고 새로운 CEO를 맞았다. 웨스팅하우스 IBM 코닥 등 다른 기업의 최고경영자들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외부인’에게 밀려났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작년엔 A사 회장이 올해는 B사 회장’으로 변신하는, 이른바 ‘CEO시장’이 활성화 돼 있다.
견고한 ‘그룹 울타리’에 갇혀 있는 우리 기업의 풍토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 그러나 최근 서서히 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 서서히 도입
▽CEO 시장 가능성 보인다〓동원증권 사장을 지낸 김정태씨가 주택은행장으로 영입된 작년 9월. 한 영국 투자자는 김행장이 취임하면서 스톡옵션을 걸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택은행 주식을 수백만주 매수했다. 김행장의 동원증권 사장 시절의 경영실적을 믿고 대담하게 베팅한 이 투자자는 결국 6000원에 매입한 주식이 3만원대로 뛰면서 수백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김행장의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하나의 ‘브랜드’를 갖는 경영자가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이미 금융권과 광고업계 등 일부 업종에서는 이같은 ‘경영자 이동’이 꽤 빈번하게 이뤄져 왔다.
대기업에서는 94년 대웅제약이 공채경쟁을 도입한 이후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90년대 중반 이후 20여명의 퇴직 경영자들이 다른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로 변신했다. 올초 코엑스(COEX) 사장으로 영입된 안재학 삼성물산 모스크바지사장을 비롯해 삼성 석유화학 사장을 지낸 박웅서씨가 고합그룹에, 이명환 삼성코닝 부사장(현대건설 신공항 사업부문 사장)등이 말을 갈아탔다.
특히 삼성 출신들은 경영자 시장에서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다. 이는 일단 삼성이 경영자를 철저히 교육시키고 있다는 ‘인재 사관학교’의 명성을 얻고 있기 때문. 한편으론 경쟁사인 현대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차없이’임원들을 내보내는 풍토때문에 경영자 시장에 ‘인력’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그러나 우리 기업의 경영자 시장은 아직 외국에 비하면 극히 폐쇄적이다. 대부분의 우리 기업에서는 임원 이상 직급의 경우 거의 다른 회사로의 ‘수평 이동’이 없는 경직성 구조다.
이는 무엇보다 오너에 대한 충성을 최우선 가치로 치는 우리 재벌체제의 속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지적. 회장이 주재하는 사적인 행사에까지 사장단이 줄줄이 참석하는 풍토에서는 ‘진짜 전문경영인’이란 사실상 배출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헤드헌터 업체인 P&E의 홍승녀이사는 “자사 경영자가 타사로 옮기는 것을 ‘기밀 누출’로 보는 것도 경영자 이동을 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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