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음 폐지론’이 다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어음폐지론은과거에도종종 있어 왔으나 이번에는 구체적인 작업까지 진행되는 중. 중소기업특위와 중기청은 ‘2010년까지 어음 완전 폐지’ 방침을 밝히고 실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유용한 거래수단인 어음제도를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음은 중기 묶는 사슬?〓소규모 섬유업체인 K사는 납품을 받는 모기업과 대금결제를 할 때마다 어음 때문에 속이 끓는다. 이달에도 3000만원 어치를 납품하고 받은 것은 6개월짜리 어음. 60일을 넘기는 기간에 대해서는 연 12.5%의 이자를 매월 주게 돼 있지만 모기업측은 아무런 말이 없다. 당장 돈이 급한 형편에 6개월을 기다릴 수 없어서 결국 사채업자에게서 9%를 떼고 현금화했다. 꼼짝없이 270만원을 손해본 것.
‘힘없는’ 중소기업들에 어음은 이처럼 원성의 대상이다. 종업원 10명 규모의 한 소기업 사장은 “제발 어음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모기업은 현금이 있으면서도 장기어음을 떼주기 일쑤고, 하청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받아든다. 행여 모기업을 자극해 거래관계가 끊어질까봐 불만을 내비칠 수도 없다.
어음은 특히 불황기에는 기업들을 죽음(부도)으로 내모는 ‘흉기’로 돌변한다. 대우나 기아 사태 당시 연쇄부도라는 악순환의 ‘고리’ 역할을 한 것도 어음이었다.
폐지론자들은 어음제도가 외국에서는 이미 거의 사멸한 제도인 점을 들어 폐지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폐지 과연 가능한가〓어음 폐지론은 과거 불황기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 작년에는 IMF로 중소기업이 줄줄이 쓰러지자 정치권에서 “2000년까지 어음을 완전 폐지하겠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최근의 어음 폐지론이 탄력을 받은 것은 작년까지 어음 폐지에 반대해온 한국은행이 10월 국정감사 때 “어음은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에 득보다 피해를 주고 있어 장기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돌아섰기 때문. 이에 화답하듯 중기특위 등이 어음제도 폐지를 공론화했다.
그러나 어음 폐지는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 어음이 ‘두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
어음은 한편으로는 제도금융이 취약했던 시절부터 독특한 신용수단 기능을 해왔다. 따라서 어음을 폐지할 경우 이를 대체할 수단이 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오히려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경기대 이기영교수(경제학)는 “대체 수단 없이 어음을 폐지하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크다”면서 “선진국의 경우 어음은 기업의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됐다”고 신중론을 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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