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신년연휴 우린 몰라요"…전산맨들 한숨

  • 입력 1999년 12월 9일 19시 48분


“한 세기가 막을 고하는 역사적 순간에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다니….”

LG그룹 계열사 전산망을 책임진 시스템통합(SI)업체 LG―EDS의 A과장. 남들이 새 밀레니엄의 벽두에서 타종(打鐘) 순간을 지켜보며 환호성을 내지를 때 그는 Y2K 상황실을 지켜야 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내지를 한숨소리가 벌써부터 귀를 간지럽힌다.

그러나 2000년 1월1일이 ‘째깍째깍’ 다가오면서 사무실은 결전을 앞둔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있다. 지난달 실시한 모의실험에서는 일부 생산라인 전산시스템이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회사에서 31일부터 내년 1월2일까지 휴일을 반납한 직원은 모두 4000여명. 낮에는 전원이 자리를 지키고 밤에는 조를 나눠 교대근무한다.

삼성그룹의 단일 전산망 ‘싱글’을 관리하는 삼성SDS도 사정은 비슷하다. 연인원 3000명이 31일 오후 4시부터 1일 새벽까지 비상대기한다. 계열사내 전산담당 요원들도 각각의 상황실에서 대기.

삼성은 31일 오후 11시 시스템 가동을 일시 중단한 다음 1시간반 뒤 다시 켤 계획이다. 이어 아침이 올 때까지 시스템 이상을 점검하고 같은날 오후 5시까지 국내사업장, 다음날에는 해외사업장의 Y2K사고를 점검하는 ‘강행군’ 일정을 마련했다.

현대는 8일 서울 종로구 계동사옥에서 22개 계열사의 Y2K 담당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Y2K운영위원회’를 열고 24시간 가동하는 ‘Y2K 종합상황실’을 현대정보기술에 설치하기로 했다. 상황실에는 각사에서 Y2K문제에 매달려온 1300명의 전산 요원들이 수시로 접속하며 사태추이를 지켜볼 계획. 30일부터 1월4일까지의 비상대응 기간에는 상황에 따라 청색 황색 적색경보가 발령된다. 임직원들은 낯선 행동요령을 머리에 담느라 분주하다.

Y2K문제에 민감한 물류업체도 초비상 상태. 자칫 대형 인명사고로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31일부터 Y2K상황실을 운영하며 최고경영자가 직접 ‘요주의시간대’에 항공기를 타는 모험도 감수키로 했다.

전산업무 담당자들은 가뜩이나 이틀로 줄어든 신년연휴가 주말과 겹치는 데다 비상대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다는 반응들.

한 관계자는 그러나 “다른 사업부 사람들도 ‘경영인프라’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기회를 통해 실감하게 될 것”이라며 존재가치를 인정받게 돼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박래정·홍석민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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