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금융시장 물흐리는 증시 '보따리장수'떴다

  • 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01분


300조원에 이르는 공사채형수익증권 시장을 놓고 금융기관간 수신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명 ‘보따리장수’가 판을 쳐 수익증권 판매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보따리장수란 증권사 등 금융기관과 실적에 따라 급여를 받기로 계약을 하고 채용된 금융상품 전담 판매상. 대규모 법인투자자와 상대하면서 세일즈를 하고 돌아다닌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뒷돈 거래도 서슴지 않아〓투신권 공사채펀드 중 대우채와 연관된 자금은 모두 35조원. 증권가에서는 만기도래 자금 중 15조원이상이 다른 금융상품이나 회사를 바꿔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증권사들이 발벗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

문제는 일부 보따리장수들이 법인자금을 유치하면서 대가성으로 ‘검은돈’을 현금 박치기로 자금담당자들에게 건네준다는 것. 보따리장수들은 증권사로부터 수익증권 유치 때 1억원당 10만∼2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인센티브로 받는 돈 중 일부를 기관 자금담당자에게 은밀히 주고 실적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급이 실적경쟁 부추겨〓특히 증권사들간 자금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들 보따리 장수들이 받는 성과급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투신사들이 1억원당 5만원 내외의 실적급을 주는 반면 증권사들은 1억원당 20만원까지 인센티브로 주고 있다고. 최근 영업을 시작한 일부 증권사는 1억원당 50만원의 인센티브를 내걸고 수익증권 판매직원을 모집하기까지 한다.

금융상품 판매를 대가로 뒷돈이 오가는 것은 증권가에서는 공공연한 사실. 수익증권 판매 인센티브가 높아지면서 실적경쟁에 시달리는 증권사 직원이 먼저 ‘리베이트’가 있다는 것을 귀띔하기도 하고 자금담당자가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법인 자금담당자의 도덕적 해이〓문제는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법인들이 선량한 자금관리자로서의 의무는 팽개친 채 거리낌없이 뒷돈을 받아 챙긴다는 데 있다.

물론 대부분 법인들의 자금담당자가 이 같은 리베이트 수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산하단체로 준기관투자가 성격이 짙은 단체들이 보따리장수와 주로 연계돼 있다는 설명이다.

자금담당자들에게 선심성 여행을 보내주거나 상품권을 돌리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을 만큼 뒷돈거래가 심각하다는 지적.

실제로 최근 한 코스닥 등록회사 자금담당직원은 증권사 직원과 뒷돈거래를 하다가 보직을 해임당해 자금업무에서 손을 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도 속수무책〓뒷돈거래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아 감독당국도 애로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금융비리 관행이 성행한다는 첩보가 많아 감사원에서는 영업직원들을 상대로 은밀히 금융상품 비리를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금감원은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감독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산하 단체기관까지 감독하기는 어렵다”며 “특히 개인간 비밀리에 이뤄지는 뒷거래는 수사를 하지 않고는 밝혀내기 어렵다”고 현실적인 감독상의 애로를 호소했다.

<최영해기자> 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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