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는 그동안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임금동결을 감수해왔고 지난해 많은 대기업이 사상 최대의 순익을 올린 만큼 “올해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
사측은 이에 대해 임금을 올릴수록 기업들의 고용 흡인력이 떨어지는 점을 노동계가 인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재계, “인상률 5% 안팎이 적정”〓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조선호텔에서 회장단회의를 열어 올해 경제성장률과 기업지불능력 생산성수준 등을 고려해 적정 임금인상률을 5.4%로 제시했다. 여기에 총 상장사의 21.3%에 이르는 법정관리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화의업체에 대해서는 “임금인상 자체가 적당치 않다”는 의견을 붙였다.
경총의 5.4%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물가상승분을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을 뺀 국민경제생산성증가율. 단순히 취업자 증가로 늘어난 부가가치 부분을 빼고 기존 인력의 생산성 증가분과 물가상승분만을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조남홍 경총부회장은 지난해 재계가 사상 최대의 순익을 올린 점이 신경 쓰이는 듯 “가이드라인을 더 높게 설정할 수도 있으나 인상률을 높일수록 고용 흡인력이 떨어져 실업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
▽노동계의 반박〓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재계의 ‘고무줄’ 잣대를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97년 이후 재계가 인용치 않던 국민경제생산성증가율을 갑자기 들고 나온 속셈이 뻔하다는 것. “재계의 기준대로라면 97년부터 3년간 4.8∼9.4%의 임금인상을 해야 마땅했지만 오히려 5% 가량을 삭감당했다”고 반론을 폈다.
민노총은 또 경총이 연봉제와 성과급제를 대폭 도입할 것을 권고한 데 대해서도 “두 제도는 IMF관리체제 시기에 임금삭감과 정리해고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신규인력 창출과 고용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노동계 권고안과 경총의 비판〓한노총과 민노총의 임금인상안은 각각 13.2%와 15.2%. 양 단체 모두 가구당 표준생계비를 산출한 뒤 현재 임금 수준과의 차이를 메우는 ‘상향식’ 분석법을 따랐다.
경총은 그러나 양 단체가 생계비 통계를 자의적으로 산출했다고 비판한다. 한노총이 96년부터 ‘도시근로자 최저생계비’ 대신 ‘생계비’ 개념을 도입한 데서 알 수 있듯 ‘삶의 질’을 높이는 수준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 민노총의 표준생계비 세목에는 ‘3인 이상 가구가 승용차를 구입하고 유지하는 비용도 포함돼 있다’고 지적한다.
▽생계비냐, 인력시장 상황이냐〓85년부터 99년까지 실제 명목임금 상승률은 노사간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사이에서 결정돼 왔다. 양측 논리가 수렴한 결과인 셈.
전경련 관계자는 “임금 결정은 생계비 수준과 노동시장의 인력수급 모두에 영향을 받아 결정되기 마련”이라고 전망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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