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 LG 한솔 등 대기업들이 ‘벤처기업 따라잡기’의 일환으로 정장과 넥타이를 포기하고 캐주얼 근무복장으로 갈아입고 있다. 하지만 ‘덩치’가 다르면 옷입는 스타일도 달라지는 법. 벤처기업의 ‘옷’이 대기업에도 과연 맞을까.
▼창의성 위해 복장 자율화▼
한솔그룹 5개사가 2월7일, 삼성SDS는 이달 13일, LG전자가 28일부터 모든 임직원에게 평일 출근복장을 정장 대신 넥타이를 매지 않는 캐주얼 복장으로 바꾸도록 제도화했다. 코오롱은 22일부터 매주 수요일을 ‘캐주얼 데이’로 정했으며 LG정밀, LG-EDS도 근무복 자율화를 검토중.
근무복 자율화에 동참한 대기업들은 한결같이 ‘기업문화 혁신’‘벤처기업의 창의성과 유연성을 배우자’는 등의 모토를 내걸고 있다. 앞서 시행한 기업들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
한솔CSN의 경우 사내 아이디어 창안 건수가 복장 자율화 실시 이전인 1월 한달 285건에서 실시후인 2월 한달 657건으로 갑절 이상인 130.5% 늘었다. 한솔CSN의 김홍식(金洪植)대표이사는 “그동안 10%(30여명)의 인력보강을 감안하더라도 자유로운 복장이 창의적 발상으로 상당부분 반영된 것”이라고 자평했다.
지난해 9월 자율복장을 도입, 근무복 캐주얼화의 ‘원조’격인 제일제당. 이 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수시채용에 200대 1의 경쟁률로 우수 인력이 대거 지원한 데에는 자율복장이 중심이 된 자유로운 근무환경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고 주장했다.
▼"사업에 부적당" 비판도▼
근무복 자율화 바람에 의구심어린 눈초리를 보내는 대기업도 상당수. 위아래 싱글 정장, 흰 와이셔츠, 대기업 배지가 상징하던 소속감과 조직성의 상실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자율화가 실시된 기업의 임원들 가운데 “입을 옷이 없다”“이런 옷차림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다.
80년대 후반 청색 잠바 차림의 근무복장을 넥타이와 양복으로 바꾼 현대그룹의 관계자는 “여성은 유니폼, 남성은 정장이라는 근무복 형태에 변화를 줄 계획이 아직까지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기업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벤처만 따라하면 무조건 좋다’는 사고방식은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캐주얼업체는 큰 기대▼
패션전문가들은 자율화의 큰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벤처화’는 경계하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 이유순(李裕順)수석연구원은 “창의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근무복 자율화가 대세임은 틀림없지만 ‘벤처식’의 편의성만을 쫓았을 때 잘 차려입은 의복이 주는 ‘자기 존중감’과 ‘자신감’의 감소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어부지리’를 노리는 곳은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 등 계열사 내에 자율화가 확산중인 패션업체들. 수만명 계열사 직원들이 할인 혜택을 노리고 캐주얼을 구입할 때 생길 ‘복장파괴 특수’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나머지 패션업계는 남성 정장시장의 위축을 우려하면서도 캐주얼 정장의 비중을 높이는 등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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