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향후 통화정책 운용방향을 놓고 고민에 빠진 상태. 당장 총선 직전인 6일 열리게 될 금융통화위원회의 결과가 관심을 끈다.
▼경제지표로는 안전▼
▽경기 과열 아닌가〓지난달 말 발표한 통계청의 2월중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경기상승세는 지속되지만 속도는 다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80%를 유지하던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78.9%로 떨어져 경제가 과열상태라고는 볼 수 없으며 인플레 압력도 가시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통계청의 해석. 2월중 소비자물가도 예년보다 낮은 전월 대비 0.3% 상승에 그쳤다.
그러나 한은 관계자는 “2월까지 수입이 작년 동기 대비 50% 이상 급증하면서 수요증가에 의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시장에 잠복해 있으며 올 1·4분기(1∼3월)의 경제성장률도 12%의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특히 2월초 콜금리 인상의 구실이었던 장단기 금리차가 3월말 현재 여전히 5%포인트 격차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대목 중 하나.
LG경제연구원 강호병(姜鎬秉)책임연구원은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단기채권에만 투자하기 때문”이라며 “경제지표만 보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에 대한 투자자의 판단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운신의 폭 좁은 통화당국〓통화정책 결정에 당장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총선과 2차 금융구조조정. 특히 총선을 앞둔 6일 한은이 소폭이라도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고 보는 전망은 많지 않다. 한은이 독립된 기구라고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렇다고 총선 이후에 금리를 올릴 수 있을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2차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금리를 올리는 것은 그만큼 구조조정 비용의 증가를 뜻하기 때문. 특히 공적자금 회수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정부로서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카드이다. 7월부터 장부가격이 아닌 시장가격으로 채권을 평가하는 채권시가평가제를 앞두고 금리를 올릴 경우 금융시장의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
▼"단계인상 충격줄여야"▼
▽‘95년을 잊지 말자’〓한은은 95년 경기과열 조짐이 보일 때 선제적 긴축정책을 취하지 못해 결국 외환위기의 한 단초를 제공했다는 뼈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APEC 서울포럼에 참석한 윌리엄 맥도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총재는 한은을 겨냥해 “긴축통화정책이 경제에 늦게 반영된다는 점을 중시해 중앙은행은 점진적으로 긴축정책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채창균(蔡昌均)연구위원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며 “총선 후라도 미리 금리를 단계적으로 올려 한꺼번에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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