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기업환경 진단-처방/개혁 주춤…경영 '먹구름'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외환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맡아온 기업부문의 경영환경이 노사문제, 지배구조 개선에 따른 경영혼선, 주가하락 등 각종 악재로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경영환경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외환위기를 불러온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의 환원’도 우려된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부문 부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실물부문마저 부실화될 경우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란 경고도 나오는 실정이다. 경영환경 악화의 주요 원인은 공공, 금융, 노동부문의 구조개혁 부진이라는 구조적 요인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이들 부문의 조속한 개혁이 기업부문 경쟁력 강화의 첩경.

전국경제인연합회 이병욱(李炳旭)기업경영팀장은 “기업인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아직 좋은 편이지만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대노총 총파업 예고▼

▽최대 관건은 노사관계〓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생산성을 뛰어 넘는 임금인상과 노사분규.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중 명목임금인상률은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넘어섰다. 4·4분기(10∼12월)의 경우 노동생산성증가율은 5.6%인 반면 명목임금인상률은 5.9%였다.

올해도 민주노총은 31일, 한국노총은 6월1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 노동계는 13∼15%의 임금인상과 주5일근무제, 40시간 법정근로시간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金榮培)상무는 “두자릿수 임금인상률과 주5일근무제를 동시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왕윤종(王允鍾)국제거시금융실장은 “노동계가 임금인상과 주5일근무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문제는 이를 조정하기 위해 설립한 노사정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또 노동부문 개혁은 얼마나 이뤄졌는지에 있다”고 말했다.

▼'황제경영 수술' 혼선만▼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재계 불만〓재계는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을 무리하게 요구해 ‘경영의 투명성 제고’보다는 ‘경영의 혼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전경련 고위관계자는 “궁극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문제는 시기”라며 “현실적으로 오너경영이 이뤄지고 있는데 단숨에 바꾸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부가 마련중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은 집중투표제, 소액주주의 대표소송권과 이사후보 추천, 주주와 사외이사의 이해관계자 거래승인, 외국인의 상장주식 소유제한 철폐 등 재계를 압박하는 요인이 많다는 분석.

왕윤종실장은 “지금은 정부가 금융부문 구조조정에 주력해야 할 시기”라며 “기업지배구조개선은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욱팀장은 “지배구조 개선은 이미 시장의 압력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며 “현대가 기업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외국인투자자로부터 외면당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무역흑자 작년 10%수준▼

▽시들해진 무역흑자와 주가상승〓올 1∼4월 무역흑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 수준인 7억7000만달러. 지난해 1,000을 넘었던 종합주가지수도 700대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은 자금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두자릿수 성장률이 지속되면 시설투자 확대에 따른 수입증가로 무역흑자가 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A그룹 관계자는 “인력의 수급, 임금, 금융조달 측면에서 개선된 게 없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기업 두드리기에만 나서는 정부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금융-노동분야 '솜방망이'▼

▽정부의 리더십 절실〓전경련 이병욱팀장은 “기업부문은 인원과 부채감축 등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면서 외환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지만 정부가 주도해야 할 공공 금융 노동부문은 오히려 경제회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부문의 경우 그동안 64조원을 쏟아부었지만 40조원의 공적자금이 추가로 투입돼야 할 지경.

B그룹 관계자는 “기업부문은 정부압력을 받아들이지만 나머지 부문은 만만치 않다”며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공공 금융 노동부문의 개혁을 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왕윤종실장은 “금융부문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번에 실패하면 한국경제가 또다시 국제통화기금(IMF)에 간다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한국개발연구원(KDI) 신인석(辛仁錫)연구위원은 “정부의 역할은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모든 부문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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