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악의 부진을 겪은 한국수출에 ‘체제전환국’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주의 경제에서 시장경제로 탈바꿈한 이들 국가는 최근 한국의 60, 70년대처럼 경제개발의 가속페달을 한껏 밟고 있다.
이들 지역이 올 들어 특별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성장이 예상되고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 가입을 앞두고 있어 유럽시장의 전초기지라는 점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플랜트 수출이 유망하다는 점 등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김두현(金斗鉉) 개발협력과장은 “작년에 수출에 역점을 둔 신흥시장으로 주목했던 중남미 중동 중국 등 이른바 ‘3중’ 가운데 아르헨티나 사태로 중남미의 상황이 불확실해졌다”면서 “3중 전략을 대신해서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옛 공산권 국가들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정동식 해외조사팀장은 “동유럽은 한국의 EU시장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도 활용도가 높다”며 “외환위기 이후 이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20%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수출기업들의 활발한 움직임〓삼성물산은 지난해 베트남에서 2억달러짜리 비료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따냈다. 지금은 정유공장 건설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 삼성물산은 앞으로 베트남에서만 3, 4건의 프로젝트 추진을 준비하고 있다.
이 밖에 동유럽권에서는 루마니아의 항만 현대화 프로젝트, 슬로바키아의 제철소 현대화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삼성물산 구교형 상무는 “블라디미르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 상황이 매우 안정되었다”며 “러시아를 올해 주요 전략지역으로 꼽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연초 사업계획 수립시 각 본부장들에게 중국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내놓으라고 강력히 지시했다. 여기에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종합상사는 지난해말 베트남에서 농업은행 전산망 건설을 수주한 데 이어 올해는 해양 플랜트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왜 체제전환국인가〓무역협회가 올해 초 내놓은 국가별 경제전망에 따르면 3% 이상 성장이 예상되는 11개 국가 가운데 중국 베트남 헝가리 체코 러시아 등 체제전환국이 절반에 가까운 5개나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팀의 이철원 전문연구원은 “특히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동유럽 지역은 현재 세계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지역이며 저렴하게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유럽 전체의 생산설비가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책 잇따라 내놓아〓수출입은행은 수출대출자금 8조원 중 상당 부분을 체제전환국에 수출하는 기업에 초점을 맞춰 집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작년보다 증액된 돈의 대부분을 이 지역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미국의 대 테러전쟁이 끝난 뒤 전후 복구사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작년보다 17%가량 늘어난 6조원의 수출보증자금의 증가분 중 상당액을 이 지역에 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경협차관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금(EDCF) 차관 1억달러 정도도 체제전환국에 집중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EDCF차관은 한국산 물건을 구입하는 조건의 ‘조건부 차관(타이드 론)’으로 개도국에 장기저리의 차관을 제공해 수출유발 효과가 큰 자금이다.
정부와 기업, KOTRA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이 구성돼 체제전환국에 파견되기도 한다. 이미 2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산업자원부 이병호(李秉鎬) 무역정책심의관은 “개방화에 박차를 가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국가에 집중적으로 시장조사단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광현기자kkh@donga.com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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