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이 정도 기술이면 30배 투자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이 회사가 투자를 받으려던 지난해엔 각종 ‘게이트’로 투자시장이 너무 얼어붙어 있었다.
올 들어 벤처투자 시장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잇따른 게이트와 경기침체로 움츠러들었던 벤처캐피털들이 최근 다시 공격적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
‘묻지마 투자’가 일반적이던 초기 벤처투자 시절보다는 투자 행태가 한층 세련돼졌다. 투자 후 1∼2년 안에 이익을 바라던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 장기투자에 들어간 게 대표적인 예. 투자 기간을 10년으로 설정한 펀드도 있다. 최근에는 특히 엔터테인먼트 바이오 구조조정기업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닷컴표’에는 무조건 투자하던 ‘묻지마 투자’는 이제 옛말이 되고 있다.
▽투자규모 크게 늘어〓KTB네트워크는 올해 투자규모를 지난해보다 49% 늘어난 2821억원으로 최근 확정했다. 이영탁 회장은 “그동안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왔기 때문에 올해 투자규모를 늘렸다는 것은 그만큼 주식시장과 경기 전망이 좋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는 올해 벤처캐피털의 투자 규모는 지난해의 2배 가량인 1조6000억원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는 ‘닷컴 붐’이 꺼지면서 투자조합수나 투자액 규모가 1999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투자관행도 바뀐다〓무엇보다 투자규모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벤처캐피털들은 주로 차입금이나 자기자본으로 투자한 탓에 펀드의 규모가 10억원대에 머물렀다. 투자액수가 적다보니 단기간을 내다보는 짧은 투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벤처캐피털과 기관투자가가 함께 투자조합을 결성하는 사례가 늘면서 펀드도 대형화되는 추세. 2000년에 325개이던 투자조합은 지난해 말보다 17% 늘어난 380개가 됐다. 올해는 더욱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일신창업투자는 최근 호주의 보험회사인 AMP사와 함께 1억달러짜리를 목표로 펀드를 만들고 있다. 일신창투처럼 역외펀드를 통해 대형펀드 결성을 준비하는 업체가 많아 앞으로 대형펀드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고정석(高晶錫) 일신창투 사장 겸 한국벤처캐피털협회 부회장은 “투자재원이 적을수록 초기엔 소규모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지만 외국 벤처캐피털처럼 투자재원이 커지면 경영난이 생긴 거대 기업이나 상장기업에까지 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히 투자기간도 늘고 있다. 5년씩 운용하는 펀드가 많아지면서 단기간에 과실을 얻기보다는 3년가량을 내다보고 투자자금을 운용하는 경향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엔터테인먼트 뜬다〓‘난타’를 공연하는 PMC는 지난해 말 창업투자회사로부터 35억원의 투자자금을 받았다.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을 10배인 5000원으로 평가받은 것. 이 회사에 투자한 기업은행 기보캐피탈 일신창투 산은캐피탈 등은 “그래도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 회사가 늘 이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난타 공연 초기인 98년에는 증자에 나섰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이광호 PMC 대표의 개인 돈과 지인들의 쌈짓돈을 모아 7억원을 겨우 만들었다.
산은캐피탈은 올해 월드컵 이벤트 회사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다. 뮤지컬 ‘팬텀 오브 오페라’에 투자를 해 재미를 본 뒤로는 연극 게임 영상 등에 대한 투자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일신창투는 TV용 애니메이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TV 방영 뒤 캐릭터가 인기를 얻으면 인형 문구용품 스티커 등 각종 캐릭터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 무한기술투자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를 최근 선보였다.
영상에 대한 투자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2000년에 이미 9개 펀드 850억원이, 지난해는 8개 펀드 741억원의 영상투자펀드가 결성돼 투자처를 찾고 있다.
▽‘묻지마 투자’는 가라〓한 투자회사 간부는 “초창기 기업에만 투자하던 벤처캐피털들이 시장성 높은 기업을 찾기 시작했다”며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나 아이디어만 있고 경영자 마인드가 없는 벤처기업은 이제 사양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에 혜택을 보는 건 어느 정도 기술력과 업력(業歷)을 가진 중견기업이나 기술력과 시장성은 있지만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조조정 기업 등이다.
또 같은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이라도 기업공개 직전의 ‘완성도 높은’ 기업으로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다.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