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비교광고? 글쎄 , 감정싸움 안될까?

  • 입력 2002년 2월 26일 17시 12분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9월3일자 주요 일간지에 르노삼성의 ‘SM5’ 등 경쟁사 제품과 자사의 ‘EF쏘나타’를 비교하는 광고를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현대차는 EF쏘나타와 SM5의 수출실적 자료를 제시하며 ‘EF쏘나타가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당시 현대차는 SM5가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자 ‘비교 광고’를 통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던 것.

현대차 영업맨들은 이 광고를 복사해 들고 다니며 영업을 해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이처럼 경쟁업체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자사 제품을 홍보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서도 작년 9월부터 비교광고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용 초기 봇물처럼 쏟아지던 비교광고는 요즘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교광고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데다 경쟁업체와의 감정적인 싸움으로 번질 경우 자칫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비칠 수도 있어 부담스러워 하는 기업이 많다는 게 광고업계의 설명이다.

▽국내 비교광고 허용과 사례〓외국에서 오래 전부터 광고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돼온 비교광고는 국내에서는 ‘소비자를 현혹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돼 왔다. 그러나 제품간의 가격과 성능 등을 비교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고려해 작년 9월부터 허용되기 시작해 3월1일로 6개월이 된다.

비교광고는 소비자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번뜩이는 재치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동원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적잖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때문에 허용 당시 기업들은 물론 광고업계도 “표현의 폭이 넓어졌다”며 정부 조치를 크게 반기고 실제로 일부 기업은 현대차처럼 과감한 비교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하나로통신은 초고속 인터넷서비스 경쟁업체인 한국통신의 ‘메가패스’를 겨냥해 전속모델인 탤런트 전지현을 앞세워 ‘붙어볼까? 누가 빠른지’라는 도발적인 카피로 한국통신을 자극하기도 했다.

지난해 시장규모가 급성장한 김치냉장고 업계의 비교광고전도 치열했다.

대우전자는 만도공조와 LG전자 등 경쟁업체 제품과 김치냉장고 기능을 조목조목 비교하는 광고를 냈다. 청호 계열의 빌텍은 자사 제품이 가장 많은 양의 김치를 보관할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김치냉장고 원조론’을 들고 나왔다.

이밖에 약주, 숙취해소음료, PC 등 다양한 업계에서 비교광고는 작년말 공격적인 홍보 수단으로 확산됐다.

▽명광고로 남아있는 외국의 비교광고〓74년부터 비교광고를 허용하고 있는 미국은 비교광고의 본고장답게 수많은 비교광고가 신문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 거의 매일 쏟아져 나온다.

콜라업계의 ‘영원한 맞수’인 코카콜라와 펩시가 상대방을 겨냥해 내놓는 비교광고는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난다.

지난해 펩시는 영국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기용한 TV광고를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로 코카콜라의 신경을 건드렸다. 베컴은 라커룸으로 가던 중 펩시콜라를 마시고 있는 한 소년에게 콜라를 한모금 얻어마신다. 소년은 대신 베컴에게 붉은 색(코카콜라의 브랜드 컬러) 유니폼을 달라고 한다. 소년이 자신의 유니폼을 갖고 싶어하는 줄 알고 벗어주지만 소년은 이 유니폼으로 펩시콜라 캔 뚜껑 부분을 닦는다.

미국의 화물운송회사인 페덱스는 경쟁사인 DHL의 제품을 포장해 배달된 박스를 보여주며 DHL보다 빨리 배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의 스포츠 브랜드 미즈노는 새 모양의 자사 심벌마크가 경쟁업체인 나이키의 심벌마크를 잡아먹는 내용의 비교광고로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은 아직 초기단계〓작년말 한창 애용되던 비교광고는 올해 들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는 비교광고를 여유있게 받아치는 너그러움이 부족하다는 게 광고업계의 중론. 그러다 보니 비교광고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소모적인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내로라 하는 국내의 한 대기업은 세계 1위 업체와 비교하는 광고를 만들자는 광고제작사의 제안을 한 순간에 거부하기도 했다.

제일기획 박성혁 국장은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의 전통과도 맞지 않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광고주들도 많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금강기획 강신규 국장은 “경쟁업체를 깎아내리면 동종업계 제품에 대한 전체적인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위험도 부담해야 하므로 비교광고를 기피하는 기업들도 있다”고 말했다.

또 객관적인 공인기관으로부터 인증된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는 비교광고 여건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현실도 비교광고 확산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지난해 9월 비교광고가 허용된 후 주요 사례
업체광고 내용
현대자동차르노삼성 ‘SM5’ 등 경쟁사 차종과 수출 실적 및 안전성 비교
대우전자만도 위니아 등과 김치냉장고 기능 우수성 비교
빌텍자사 김치냉장고와 경쟁사 제품의 성능을 조목조목 대조
하나로통신KT의 ‘메가패스’를 겨냥해 초고속 인터넷서비스 우수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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