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日 韓食열풍’ 한국은 입맛만…

  • 입력 2002년 4월 28일 18시 05분


‘한국 식품업체는 기고 일본 식품업체는 날고….’

일본에서 한국음식 열풍이 불고 있지만 정작 한국 업체들은 일본 시장을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고유 음식을 산업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모자란 데다 일본 업체들이 워낙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별미’ 정도로 취급되던 한국음식은 이제 일본인 가정에까지 스며들 정도로 일반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굴지의 식품회사들은 제품화한 한국음식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대형백화점의 식품매장에도 한국음식 코너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식품업체들의 대일(對日) 수출은 별로 늘지 않았다. 제일제당 글로벌사업팀의 안창언 팀장은 “최근의 한국음식 열풍은 김치가 일본인에게 친숙해지면서 다른 음식에까지 2차 수요를 일으킨 것”이라며 “일본 식품업체들은 이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 한국음식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추장’으로 ‘스테이크 소스’를 개발할 정도로 활기차게 진행 중인 일본 업체들의 한국음식 산업화는 한국 업체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뛰는 일본 식품업체들〓일본 1위의 식품업체 아지노모토는 지난해 2월 곰탕과 잡채를 즉석식품으로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 8월 김치찌개 불고기 등의 복합양념을, 올 봄에는 닭갈비 낙지볶음 양념을 속속 내놓았다.

아지노모토 측은 “여성이 주로 읽는 요리 및 패션잡지 4개에 99년에는 한국 요리 27개가 소개됐으나 2000년에는 58건으로 급증하는 등 관심이 크게 높아져 제품화에 착수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광고부에서 일하는 가야누마 기미에(萱沼公惠)는 “그동안 시장을 꾸준히 체크한 결과 일본에서 한국음식이 충분한 시장성을 가진다고 판단했다”면서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고 월드컵 분위기 덕에 더 좋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다른 업체보다 한발 앞서 한국음식을 제품화해온 미스캉은 김치찌개 국밥 비빔밥 나물 등에 사용되는 복합양념을 선보인 데 이어 올 봄에 전자레인지에 녹여 먹는 비빔밥 불고기 닭갈비 등 즉석식품을 새로 내놓았다.

미스캉 광고부에 근무 중인 다카기리 아키라(高限章)는 “슈퍼마켓에 내놓은 한국음식용 복합양념의 반응이 워낙 좋아 즉석식품까지 내놓았다”고 전했다.

한국음식 광고도 부쩍 늘었다. 에바라 식품은 TV 광고를 ‘된장 나베’(나베는 일본어로 찌개라는 뜻)라고 아예 한국어로 내보내 한국 된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간장으로 유명한 식품업체 기코망 역시 지난해 11월 내놓은 소주에 한글로 ‘트라이앵글 우정’이라고 적었다. 한국 소주를 원료로 만들었다는 ‘티’를 내기 위해서다.

2년6개월 째 일본에서 유학 중인 김성원(金成垣·29·도쿄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한국음식이 편의점에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너무 많은 한국음식이 나와 깜짝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걸음 느린 한국업체〓지난해 7월 국제식품표준위원회(CODEX)의 ‘원조 논쟁’에서 한국 김치가 일본 기무치를 누른 기쁨도 잠시, 일본 김치시장에서 한국산 김치 점유율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많은 일본 회사들이 한국김치 생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본식품수급연구센터에 따르면 일본의 김치시장은 97년 연간 13만2200t 규모에서 99년 27만2800t, 2000년 34만2300t, 2001년 37만5200t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 중 한국산 김치의 비중은 99년 전체의 8.7%인 2만3800t을 정점으로 2000년 2만3000t(6.5%), 2001년 2만2200t(5.9%)으로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

농수산물유통공사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이 한국 맛을 강조하면서 싼값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업체들은 한국에서 수입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한글을 포장지에 표시하는 등 한국적 색채를 강조하면서 ‘한국김치’를 팔고 있다.

식품업체 도카이 쓰게모노(東海漬物) 영업부의 이토 하루오(伊藤春生)는 “일본 업체들이 만든 김치 가운데 절반 이상에 일본어 또는 한글로 ‘한국’이라고 써있다”면서 “새로 생긴 김치 생산업체 10곳 중 3곳은 한국과 협력하는 회사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본시장에서 국내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데 대해 국내 식품업체 동원F&B 관계자는 “한국 식품업체들은 고유 식품을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약하다”며 “몇몇 업체가 발효를 정지시키는 등의 보존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이런 쪽 기술 수준이 낮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식품개발연구원 박완수 박사는 “일본 식품회사들이 한국음식을 제품화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음식을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라며 “장기적으로 한국음식 시장이 확대되면 국내 업체들에도 실보다는 득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일본 주요 식품회사들이 팔고 있는 한국음식
회사홈페이지제품과 출시 연도
아지노모토www.ajinomoto.co.jp김치만두 레토르트(2001), 지지미 레토르트(2001), 비빔밥 레토르트(2001), 국밥 레토르트(2001), 잡채 조미료(2001), 불고기 양념(2001), 곰탕 조미료(2001), 닭갈비 양념(2002), 낙지볶음 양념(2002)
미스캉www.mitsukan.co.jp비빔밥 조미료(1998), 국밥 조미료(1998), 고추장(2000), 나물(2000), 닭갈비 양념(2001), 불고기 양념(2001), 한국 양념(2002), 비빔밥 레토르트(2002), 불고기 레토르트(2002), 닭갈비 레토르트(2002)
에바라www.ebarafoods.com김치 조미료(94), 김치찌개 조미료(99), 된장찌개 조미료(2001), 조래기 드레싱 고추장맛·짠맛·간장맛(2001)
기코망www.kikkoman.co.jp불고기 양념(2001), 소주(2001)
자료:각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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