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빚 잘쓰면 주가 뜬다?

  • 입력 2002년 4월 29일 17시 19분


대우조선해양(옛 대우조선)은 2001회계연도의 부채비율이 322%로 꽤 높은 편이다. 그러나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순이익증가율도 각각 23.0%와 186.5%로 높다. 신세계 SK가스 하이트맥주 등도 부채비율이 높지만 ROE, 순이익증가율, 주가가 높은 기업이다.

반대로 호남석유화학은 부채비율이 65%로 낮지만 ROE와 순이익증가율도 각각 0.9%와 -78.7%로 낮다. 포스코(옛 포항제철)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도 비슷하다.

외환위기 직후 부채비율은 기업의 생살부(生殺簿) 역할을 했고 ‘무차입경영’은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되고 ‘ROE 혁명’이 증시를 끌어올리면서 무차입 경영보다 ‘레버리지(지렛대·leverage) 효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남의 돈을 빌리더라도 유망한 사업에 투자해 이자보다 많은 이익을 내는 회사가 성장하는 시대가 되돌아온 것이다.

▽무차입이지만 경영은 없다?〓12월 결산 상장법인 가운데 2001회계연도의 부채비율이 한자릿수(4.57%)인 회사가 하나 있다. 이름은 디에이블. 컴퓨터 주변기기 및 네트워크 장비 수입 판매 업체다.

이 회사는 1961년에 세워진 대원제지의 후신. 대원제지는 97년 이후 핵심설비인 제지공장과 제지기계를 팔고 휴면(休眠) 법인이 됐다. 회사 주식담당자는 “상장이 폐지되는 것을 막기 위해 99년 큰돈 들이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지금의 사업을 시작했다”며 “아직 뚜렷한 사업 방향을 정하지 않아 빚을 내서 투자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29일 주가는 7000원.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계속 내림세다.

새롬기술은 코스닥 등록법인 가운데 지난해 부채비율이 3.5%로 가장 낮은 회사다. 이 회사는 99년 12월 증자를 통해 3700억원을 끌어들여 현금이 남아도는 바람에 빚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새롬기술이 코스닥 시장에서 가장 좋은 회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2000억원을 인터넷전화 별정통신(휴대전화를 이용한 국제전화) 멀티미디어 사업 등에 투자했지만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인기 한화증권 연구원은 “한 번도 꿈을 실적으로 연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새롬기술의 박준호 매니저는 “처음으로 일부 서비스를 유료화한 올해 이익을 내느냐가 관건”이라며 “새로운 사업에 추가로 투자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시장은 일찌감치 이 회사의 성장성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2000년 2월 한때 30만8000원하던 주가는 29일 6170원이다.

▽레버리지 효과와 부채비율〓레버리지 효과란 부채를 지렛대로 삼아 ROE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A라는 회사가 100억원을 투자해 10억원의 순익을 올렸고 이 돈이 모두 자기자본이라면 ROE는 10%에 불과하다. 만약 투자액의 절반인 50억원이 타인자본이라면 ROE는 20%로 높아진다. 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에는 부채를 끌어들여 투자하는 것이 주주이익을 높여주는 것.

레버리지 효과는 주가에도 반영된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포스코는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레버리지 효과를 내지 못해 주가가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한빛증권이 12월 결산 상장 법인 406개의 지난해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부채비율이 100∼150%인 기업의 주가가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많이 올랐고 이익증가율도 가장 높았다.

신성호 한빛증권 이사는 “기업이 무차입 경영을 하면 경기 침체나 금리 변동 등에 따른 리스크는 피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경기 회복기에도 타인자본을 사용하지 않으면 좋은 투자 기회를 놓쳐 성장성 면에서 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도 “지금까지는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비용을 낮춘 회사가 이익을 냈지만 이제는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회사가 이익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적정한 부채비율은?〓신 이사는 “업종의 특수성과 경기상황, 기업의 크기 등에 따라 적정한 부채비율과 기대할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전자 화학 등 수출 및 경기에 민감한 업종은 경기회복기에 큰 레버리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음식료 의류방직 제약업종 등에서는 무차입 경영을 하는 기업들이 강하다.

물론 지나치게 높은 부채비율은 기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데 이견이 없다. 12월 결산 거래소 상장기업은 부채비율이 150%를 넘어서면서 평균 ROE와 이익증가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수익구조가 취약한 코스닥 등록기업은 부채비율이 낮을수록 수익, 주가 등이 좋아 ‘낮은 부채부담〓좋은 기업’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12월 결산 상장 법인 부채비율별 주가 및 실적
부채비율(%)종목(개)주가상승률(%)ROE(%)이익증가율(%)
∼508690.310.9-47.0
50∼10011994.58.2-12.1
100∼15076113.47.761.1
150∼20049110.43.0-16.1
200∼30042101.6-2.4적자축소
300∼4001898.3-12.6적자전환
400∼1620.3-12.3적자축소
계(평균)40689.80.4-

12월 결산 등록 법인 부채비율별 주가 및 실적
부채비율(%)종목(개)주가상승률(%)ROE(%)이익증가율(%)
∼5017982.02.9-63.8
50∼10015878.20.7-93.1
100∼1508181.5-8.6적자축소
150∼2006061.8-11.7적자확대
200∼3004157.4-7.1적자전환
300∼4001021.5-25.8적자전환
400∼1443.3-48.0적자확대
계(평균)54374.6-4.7-
1.부채비율〓2001년 말 부채총계÷자본총계2.관리종목 금융업종 기업병합 및 분할기업, 2001년 9월18일 이후 등록기업 제외3.ROE〓순이익÷(2001년 기초 자본총계+기말 자본총계)/24.주가상승률은 2001년 9월17일∼2002년 4월8일 종가기준5.코스닥 부채비율 200∼300%기업 중 KTF LG텔레콤 제외
자료분석:한빛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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