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제조업체로 유명한 일본의 캐논. 회사 이름 자체가 관세음보살의 ‘관음(觀音)’에서 유래됐다. 창업이념도 불교의 상생(相生)개념에서 따온 ‘공생(共生)’. 회사는 물론 종업원, 고객, 협력업체, 대리점 모두의 이익을 추구한다.
롯데캐논 김천주 이사는 “광학기기 제조업체로 출발한 중소기업이 글로벌 기업이 되기까지는 공생정신이 성장의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끝없는 약육강식’ ‘80 대 20의 사회’ 등으로 상징되는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와 불교의 접목을 모색하는 경영자나 경제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이미 기업경영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도입한 기업이 많다.
경영이란 단어도 불교에서 온 용어. “경(經)은 진리, 영(營)은 영위한다는 뜻으로 경영이란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라고 불교용품 전문 대기업 하세가와의 하세가와 유이치(長谷川裕一) 사장은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불교와 경제의 접점을 찾는 노력이 두드러지지 않은 편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상무는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한국에서는 ‘산중(山中)불교’의 전통이 너무 강해졌고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불교를 세속적인 삶과 거리를 두는 종교로 잘못 인식해왔다”며 “불교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불교와 경제의 만남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외국의 붓다경영〓일본의 경영인들이 추구하는 청부(淸富·깨끗한 부)사상은 일본인들이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불가의 가르침을 접목해서 만든 개념이다. 부를 추구하지만 부에 매몰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일본 경영자들의 전통은 청부사상에서 나왔다.
벤처에서 출발, 대기업으로 성장한 교세라 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명예회장은 그 자신이 임제종(臨濟宗)수도승 출신.
교세라는 우주선의 부품을 만들 정도의 첨단 회사. 그러나 이나모리 회장은 첨단 경영보다는 ‘종업원에 대한 끝없는 신뢰’ ‘기업의 사회에 대한 헌신’ 등 불교경영을 실천하면서 승승장구해 일본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최근 불교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 티베트 불교에 감화된 미국인 마이클 로치는 81년 앤딘 인터내셔널 다이아몬드사의 창립멤버로 들어가 ‘금강경’에 담긴 붓다의 지혜를 경영현장에 접목, 마음을 비우고 부를 나누는 경영원칙을 실천했다. 직원 4명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로치씨가 은퇴할 때인 88년에 연간 1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환경경영을 강조하는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도 불교의 생태주의적 세계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불교와 경제의 만남〓불교에 대한 한국인의 가장 큰 오해는 ‘불교는 현세의 삶을 덧없는 것으로 보고 자본축적이나 노동에 관한 윤리가 없다’는 점. 서울대 국제지역원 박세일 교수는 “불교의 가르침은 너무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지 현세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며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정신이나 사바세계를 부처의 세계로 만들려는 정신들은 모두 현세를 긍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교는 구체적인 경제윤리도 갖고 있다. 동국대 경제학과 장오현 교수는 “부처님은 너무 사치에 빠지지도 말고, 궁핍하게 살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으며 수입은 4등분하여 4분의 1은 스스로 쓰고 4분의 2는 사업에 재투자하고 4분의 1은 저축하라고 말씀하셨다”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부처님의 실천지침은 노동윤리의 정화”라고 강조했다. 자본주의를 형성한 청교도 정신 못지 않은 경제철학이 불교에도 담겨 있다는 것.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모든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상호작용을 하며 변해 간다’는 연기법(緣起法)은 자본주의의 분업체계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이버 사회의 원리를 간명하게 설명해준다.(허신행 서울시농수산물공사 사장)
박세일 교수는 “연기법은 ‘세계화’시대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며 “월스트리트가 금융세계화를 통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시스템의 반란으로 전체가 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연기론은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붓다 경영〓부처의 가르침은 삶의 근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에 기업경영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유필화 교수는 “화엄경의 ‘남을 이롭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自利利他)’정신은 현대기업의 마케팅 철학인 철저한 고객지향정신과 같은 말”이라고 말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가르침도 변화경영의 핵심 개념. 수많은 기업들이 ‘과거 경험의 포로’가 돼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서강대 경영학과 노부호 교수는 “경영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은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라’‘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一切唯心造)’는 가르침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자들이 유행처럼 경영혁신의 아이디어를 바깥에서 찾고 있지만 직원들이 회사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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