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헤드(기업분석담당 임원)는 최소한 100만달러(약 12억원), 국제적으로 이름이 있는 헤드는 부르는 게 값.’
증권업계 애널리스트의 몸값이 뛰고 있다. 시장에서 웬만큼 인정받으면 억대 연봉을 받는다. 한두 차례 스카우트를 거치면 금세 수억원에서 10억원대에 육박한다. 국내외 증권사들이 리서치 강화에 나서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탓이다.
고액 연봉의 지름길은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는 것. 베스트 선정 경쟁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바이코리아에서 2002년까지〓애널리스트 억대 연봉시대는 ‘바이코리아’로 시작됐다. 99년 현대증권은 ‘바이코리아(한국 주식을 사자)’를 외치며 분야별 1등 애널리스트 스카우트에 나섰다. 정태욱(헤드) 조병문(금융) 임정훈씨 등 스타들이 거액을 받고 현대증권으로 옮겨갔다.
D증권 관계자는 “현대증권의 스카우트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다른 증권사들이 집안단속과 빈자리 메우기를 위해 연봉을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99년이 1차라면 2002년은 2차 애널리스트 몸값 급등이다. 2차 급등은 증권업계의 ‘빅뱅’에서 출발한다.
올 들어 증권사들은 변신 압력을 받고 있다. 이는 △신한지주의 굿모닝증권 인수로 시작된 금융업계 재편 △수수료 수익에 의존하는 수익구조 탈피 △투자은행 추구 △몸집 불리기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리서치 강화가 필수적이고 투신운용 투자자문 등 운용부문이나 외국계 증권사까지 스카우트에 뛰어들었다.
H증권의 한 임원은 “지난해 말 한 증권사가 100억원을 준비해두고 애널리스트 스카우트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대신 한빛 LG증권 등은 “좋은 인력이 있으면 무조건 뽑아온다”는 방침을 천명했다.이들 회사가 올해 필요한 애널리스트는 1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자리바꿈으로 연봉 치솟아〓국내에서 활동하는 애널리스트는 줄잡아 600여명. 이 가운데 100여명이 최근 6개월간 자리를 바꿨다. D증권에서 일하다 최근 회사를 옮긴 2명의 애널리스트는 각각 1억5000만∼2억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연봉의 2배를 넘는다.
S증권 관계자는 “인정받는 30대 초반의 애널리스트를 데려오려면 적어도 2억원은 줘야 한다”며 “은행이나 반도체 담당은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연쇄 이동도 드물지 않다. 올 들어 대우증권 이승주 연구원이 하나증권으로 옮기자 굿모닝증권의 서영수 연구원이 그의 자리를 메웠고 서 연구원의 자리는 다시 LG증권 홍진표 연구원이 옮겨갔다.
자리바꿈 과정에서 갈등도 빚는다. K연구원은 최근 당초 가려던 회사와 계약을 포기하고 거액의 연봉을 약속한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됐다. 이 과정에서 연봉이 10억원을 넘어섰다는 후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글쎄요〓D증권에서 일하는 B연구원은 “주요 업종을 맡으면 3년 내에 수억원대의 연봉으로 스카우트되거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주요 업종을 맡았으니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되지 못하면 실패를 인정하고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
업계에서는 ‘베스트 애널리스트〓거액연봉’의 공식이 자리잡고 있다. 베스트로 꼽히면 손쉽게 거액의 연봉으로 스카우트되기 때문이다.
베스트 애널리스트는 주로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발표한다.
삼성투신운용 김영준 주식1팀장은 “바쁠 때 설문요청을 받으면 그냥 아는 이름을 찍는 경우도 많다”면서 “실력과 무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펀드매니저에게 로비를 하는 애널리스트도 있다. K증권 관계자는 “아침마다 펀드매니저에게 문안전화를 하는가 하면 기업탐방 결과나 며칠 후 발표할 매수추천리포트를 미리 펀드매니저에게 흘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과열 왜곡 해소해야〓교보증권 임채구 기업분석팀장은 “능력 있는 사람에게 거액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고액스카우트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말했다. 베스트 선정이 왜곡되는 데다 잦은 자리바꿈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 출신의 한 투자자문사 사장은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증권사가 애널리스트에 의존하려 하기 때문에 몸값에 거품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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