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즈프리를 사는 고객이 TV를 사는 고객보다 차량용TV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한 것. 벽걸이TV 역시 군더더기처럼 옆에 있던 차량용 TV를 분리하자 고객이 더 찾게 됐다.
상품의 위치만 바꿔도 이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모든 상품은 가장 잘 팔리는 조건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밝혀내기는 쉽지 않았다. 상품은 수십만종에 이르고 판매에 영향을 주는 요인도 무수히 많기 때문.
그러나 컴퓨터의 발달과 데이터의 축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판매 환경을 상품별로 분석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있다. ‘장바구니 분석(Market basket analysis)’으로 불리는 이 마케팅 기법은 가격, 위치, 날씨, 고객특성 등의 조건이 상품의 매출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가장 잘 팔리는 환경을 찾아낸다.
서울대 경영학과 김병도 교수는 “장바구니 분석은 매출을 높이고 재고를 최소화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마케팅 기법”이라며 “매장 곳곳에 과학적 기법이 스며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98년 이마트가 처음 도입했으며 지금은 많은 업체들이 활용하고 있다. 이마트 홍충섭 부사장은 “상품회전율이 업계 최고 수준이 된 것은 장바구니 분석을 통한 타깃마케팅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마트 MSV(Merchandising Supervisor)팀은 각종 데이터 분석을 통해 3800여개의 알짜 정보를 발굴해 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적재적소에 적합한 양을〓올해 초 이마트 수원매장은 어린이용과 일반인용으로 분리해 진열하던 게임용 CD를 한 곳에 모아놓았다. 그 결과 게임CD와 컴퓨터 매출이 함께 15%씩 늘었다. 자녀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젊은 부모가 늘면서 함께 게임매장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기술 발달로 품질차가 줄면서 상품 진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대형 할인점들은 상품마다 ‘제자리’를 찾아주는 데 골몰하고 있다.
진열하는 양도 중요하다. 많이 진열한다고 더 잘 팔리지는 않는다. 샴푸의 경우 기존 진열량보다 3배 가량 늘렸을 때 공간 대비 매출액이 가장 많았다. 이런 진열량 정보는 소중한 ‘영업비밀’이다.
▽날씨에 상품을 맞춰라〓장바구니 분석 결과 이마트는 비가 오면 흰 우유 진열량을 줄이고 떠먹는 요구르트 등 대체 유제품의 진열량을 늘린다. 몇년 동안 관련제품의 매출과 날씨를 분석한 결과 비가 오면 흰 우유 판매량이 평균 30%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
할인점 상품 가운데 3분의 2 정도는 날씨의 영향을 받을 정도로 날씨와 판매의 관계는 밀접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과학적 분석 없이 매장 직원이나 제조업체의 ‘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우유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의 날씨 효과도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은 일반 상식과 달리 겨울에 ‘대용량’ 제품을 중심으로 잘 팔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마트 MSV팀 김광식 과장은 “과거에는 날씨 효과를 잘 알지 못해 재고가 생기거나 물량이 모자라는 비효율적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고 말했다.
▽표준화와 차별화〓할인점은 전국의 매장을 대부분 똑같이 구성하며 상품도 거의 같다. 표준화를 통해 비용을 크게 절감하기 위한 것. 하지만 최근에는 지역주민의 성향에 따라 상품과 매장이 달라지는 추세다. 이마트 서부산점과 해운대점은 다른 지역 매장과 달리 순대를 팔 때 소금 소스뿐만 아니라 쌈장 소스도 준다. 부산지역은 순대를 쌈장에 찍어먹기 때문이다.
주류 매장도 지역별로 다르다. 강원도는 옛 경월소주인 ‘산’이, 대구지역은 ‘금복주’, 전라도는 ‘보배’가 매장의 50%를 차지한다. 개점 초기에는 진로소주를 가장 많이 진열했다가 비율을 줄였다.
삼성전자 등 전자산업 종사자가 많이 사는 수원점은 가전매장을 유독 화려하게 꾸미는 등 지역 주민에 맞는 매장 및 상품 차별화는 유통업체의 주요 화두로 등장했다.
▽세일품목도 과학적으로 골라〓유통업체들은 종종 원가 이하로 파는 초특가 세일을 고객 몰이용으로 활용한다. 이로 인해 입는 손해는 점포 전체 매출 상승으로 상쇄한다. 문제는 어느 제품을 어느 정도 할인해야 효과가 큰지를 결정하는 것.
이마트 MSV팀 김명석 과장은 “행사를 하는 여러 품목의 효과를 모두 분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이 분야도 최근 조금씩 분석 결과가 나오고 있다”면서 “식품의 경우 시식 행사를 할 때 매출 차이가 2배 이상 나는 상품만을 행사에 참여시킨다”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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