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초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은 이런 주문을 했다. 미국 거주 시절 된장국을 끓이다 아파트 전체에 냄새가 퍼져 당황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곡동 프로젝트’는 이미 60층이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주상복합은 사무실처럼 창문을 열 수 없어 환기가 잘 안 된다. 하물며 음식냄새 없는 환경이라니….
연구가 시작됐다. 해법은 주방과 거실 사이에 마련한 공기막(에어커튼). 주방 공기가 거실로 흐르지 않도록 기압차도 조절했다. 거실은 1기압, 주방은 0.98기압. 모두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비책(秘策)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모델하우스에서 하루 종일 청국장을 끓여댔지만 내방객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2동 467에 터를 잡은 ‘타워팰리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대지 2만3000여평에 63빌딩보다 높이 솟은 7개동 3066가구. 평당 1600만원이 넘는 분양가에 최첨단 편의시설도 관심을 끌었다. 10월이면 이 아파트의 1차분 1499가구가 입주한다.
타워팰리스의 건축개념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다. 삼성이 주거문화의 ‘혁명’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공학적으로도 상업용지를 활용해 주거공간을 확보하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줬다.
하지만 혁명의 성공을 단언하기는 이르다. ‘실험’은 이제부터다.
▽실험1:쾌적한 초고층〓타워팰리스의 가장 큰 특징은 262m(69층)에 달하는 초고층이라는 점. 삼성은 여기에 쾌적함을 추가했다.
통상 아파트가 높을수록 밀도도 높다. 그만큼 주거환경이 열악해진다.
이에 대해 삼성은 똑같은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에서도 건물을 높게 지으면 바닥에 여유공간이 많이 생겨 환경이 쾌적해진다고 주장한다. 엿가락을 길게 늘여 세우면 지면에 닿는 공간이 줄어드는 이치다.
실제 타워팰리스 대지면적 중 건물바닥이 차지하는 공간은 48%에 그친다. 나머지는 녹지나 보행자 도로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논리가 도심 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쾌적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향후 도시설계에 반영해야 한다고 추천한다.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 조경진 교수는 “늘어나는 도시인구를 감안하면 초고층 주거시설은 불가피한 대세”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쾌적함으로 포장한 수익극대화라는 비판도 제기한다.
국토연구원 천현숙 책임연구원은 “초고층 주거시설은 뉴욕 맨해튼처럼 중심업무지역에 적용되는 특수한 형태”라며 “도곡동은 주거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굳이 초고층이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초고층 단지 내부는 쾌적할 수 있겠지만 주변 주거환경은 오히려 악화돼 사회 전체의 효용은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실험2:서구식 상류사회〓삼성의 분양방식은 독특했다. 돈이 있다고 해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타워팰리스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사회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서구식 상류사회로 꾸며졌다. 1차분 계약자 중 금융업체와 대기업 임원이 490명으로 가장 많고 의료인과 기업체 오너가 각각 100명, 법조계와 전문직 교수 등이 뒤를 잇는다.
삼성물산 유광석 전무는 “타깃 고객은 10억원을 부담할 수 있는 50대”라며 “타워팰리스 단지가 다른 부촌(富村)과 차별화 되는 점은 특정 계층을 위한 커뮤니티를 조성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전문가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특정인을 위한 공간은 계층별 괴리감만 증폭시킨다는 것.
A대학 건축과 김 모 교수는 “계층별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은 지역과 역사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며 이러한 경우에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일부에서는 고급 소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데 주택에 대해서만 공평한 분배를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서울대 건축학과 전봉희 교수는 “고급 소비층을 겨냥한 단지를 조성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세금을 서민 주거안정에 활용한다면 굳이 특정 커뮤니티를 백안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험3:시세차익〓아파트 품질은 시세가 말해주는 법. 현재 프리미엄은 최고 1억원에 달한다. 반면 분양가 수준에 나와 있는 매물도 흔하다.
같은 단지에서도 극심한 차별화가 나타나는 이유는 층과 방향 때문.
좁은 공간에 높게 짓다 보니 일반 아파트와 같은 판상형이 아닌 타워형 설계가 채택됐다. 타워형은 네 방향으로 각 가구가 배치된다. 북향이나 서향은 남향 가구에 비해 값이 떨어진다는 게 주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조망이 좋지 않은 저층부도 가격이 낮은 편이다.
인근 T공인 관계자는 “입주 후 실제 주거여건이 확인되면 가격 변동이 한 차례 더 있겠지만 층과 방향에 따른 차별화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기정기자 koh@donga.com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건축 개요 (단위: 평,만원) | ||||||||
아파트 | 대지 | 연면적 | 층수 | 입주 | 평형 | 가구수 | 시공사 | 평당 분양가 |
타워팰리스Ⅰ | 10,193 | 138,544(4개동) | 66층 | 2002년 10월 | 21∼101 | 1499 | 삼성물산 | 771∼1,660 |
타워팰리스Ⅱ | 6,263 | 89,737(2개동) | 55층 | 2003년 2월 | 17∼101 | 957 | 삼성중공업 | 931∼1,831 |
타워팰리스Ⅲ | 5,442 | 67,620(1개동) | 69층 | 2004년 5월 | 47∼103 | 610 |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 723∼1,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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