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 ‘성공 DNA’ 기업이념을 찾아라

  • 입력 2002년 6월 25일 17시 47분



지난해 여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프랑스와 체코에 잇따라 5 대 0으로 참패한 직후. 축구팬들은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한국팀을 비난했지만 선수들은 달랐다. 송종국 이천수 같은 선수들은 여론이 최악일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16강에 갈 수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왔다. 그 전에는 반대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일부에서 16강 진출을 언급했지만 선수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국민의 기대가 부담스럽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선수들은 히딩크 감독이 팀을 맡은 뒤 달라진 것으로 ‘선수들과 감독 사이의 믿음’을 꼽았다. 감독 스스로 승리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것은 물론 이를 선수들과 공유했던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추구하는 확실한 가치관이 서 있고 구성원들이 이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기업의 비전이 운명을 결정한다〓삼성 이건희(李健熙) 회장은 87년 취임 이후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면서 ‘21세기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당시 삼성 내부에서도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21세기라는 말도 생소한데다 한국 기업이 세계 일류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는 국내외에서 세계 초일류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LG 구본무(具本茂) 회장은 2002년 새해인사모임에서 ‘1등 LG’를 주창했다. “고객이 신뢰하는 기업,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기업, 경쟁사들도 배우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1등 LG’가 우리 모두 달성해야 할 목표”라고 강조했다.

요즘 LG 임직원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1등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LG전자 등 계열사들은 최근 ‘1인 1종목 1등 하기’ 대회를 열어 ‘114보다 빠른 인간 전화번호부’ ‘제품수리 만물박사’ ‘PDP시장의 50%를 삼킨 영업통’ 등 다양한 1등을 선정해 직원들의 ‘기(氣)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경영철학과 기업이념은 다르다〓경영철학이 최고경영자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면 기업이념은 구성원들의 합의와 공유를 바탕으로 한다.

SK는 79년 당시 최종현(崔鍾賢) 회장 때 SKMS(SK의 경영관리체계)를 정립했다. 경영의 기본이념 등을 체계화한 이 시스템은 당시 최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전원의 합의에 의해 만들었다고 한다. 89년에는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SUPEX(Super Excellent)’를 정립했다.

SKMS는 매우 포괄적인 체계지만 핵심은 ‘고객 행복’. 전문가들은 ‘고객이 OK할 때까지’ 라는 표어에 대해 “이념을 간명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한 수작(秀作)’이라고 평한다.

삼성의 사내 인트라넷 이름은 ‘싱글(Single)’이다. 문화 공동체, 정보의 공유, 언어의 통일 등을 이루어 일체(一體)가 되자는 뜻이다.

▽인재관리의 핵심도 가치관〓최우석(崔禹錫) 삼성경제연구소장은 “빠른 승진과 높은 보수만으로 확보한 인재는 언젠가는 같은 이유로 떠난다”고 단언했다. 최 소장은 “따라서 한평생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숭고한 대의명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 핵심 인력 확보의 좋은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 회장도 인력 관리에서 가치관을 중시했다. 회사의 가치관을 적극 수용하면서 성과가 높은 인재는 ‘핵심 인력’으로 분류해 좋은 대우를 해준다. 가치는 수용하는데 성과가 높지 못한 사람에게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성과는 높지만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제거한다’는 것이 웰치 전 회장의 인재 관리 방법이었다.

▽가치체계가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일본의 전통 깊은 식품회사 유키지루시(雪印)는 2000년 위기를 맞았다. 이 회사의 우유를 마신 사람들이 식중독을 일으켰는데 1주일에 1만명이 입원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회사는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하다가 주가가 폭락하고 사장이 사임하는 사태로 번졌다.

이보다 앞선 1982년 미국 시카고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 존슨앤드존슨(J&J)이 만든 약품 ‘타이레놀’을 먹은 7명이 사망했다. J&J는 즉시 ‘위기관리 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는 한편 자발적으로 미국 전역의 타이레놀 1억달러어치를 회수했다. J&J는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굳히고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두 회사의 차이는 기업이념에서 나왔다. J&J는 주주가 가장 우선시되는 미국 기업 풍토에서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강령(credo)을 갖고 있다. 일찍부터 체계화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상황에서 확실한 ‘기준’을 갖고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신장(姜信長) 상무는 ‘기업의 공통적(shared) 가치관이야말로 그 기업의 DNA’라고 말했다. 유전자가 모든 생물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처럼 기업이념이 모든 경영전략과 제도, 기술, 조직원의 행동 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라는 설명이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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