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후에도 한동안 상황이 계속 악화된 것도 한국이 이들에게 ‘원화가치 상승의 기대’를 심어 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예금 인출 자제, 장롱에 있는 달러 모으기, 대기업의 달러 싹쓸이 자제 호소, 수출기업에 달러 내놓기 호소 등 ‘경제문제를 사회운동으로 풀려는 시도’들은 냉혹한 이코노미스트인 이들의 눈에는 그리 탐탁지 않은 처방이었다.
결국 정부가 금융 및 재벌 개혁, 부실 종금사 폐쇄, 은행지불능력 확충, 환율변동폭 확대, 국제기준 수용 등 IMF와의 약속을 실천하며 ‘이들이 평가하는 시장안정 신호’를 보내자 상황은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게다가 △외국인 투자가의 엄청난 자금과 △외국계 증권사의 글로벌 리서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고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3가지 능력도 함께 갖추고 있다. 수급(외국인 매매)과 매크로(경제) 및 마이크로(기업) 등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3가지 요소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어 한국 증시에 대해 국내 전문가와 차별화된 분석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홍콩에서 국내로〓외국계 금융기관에서 펀드매니저를 하다 국내로 들어온 증권맨도 적지 않다. LG투자증권 박윤수 상무는 홍콩의 주피터자산운용과 푸르덴셜자산운용(영국)에서 10년간 펀드매니저를 하다가 리서치헤드로 변신한 케이스. 그는 성균관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토종이지만 남다른 영어 실력으로 홍콩에 진출했다가 살로먼스미스바니(SSB)증권 서울지점에서 리서치헤드를 지내기도 했다.
임선근 도이체증권 한국대표도 쟈딘플레밍자산운용에서 펀드매니저를 하다 영업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템플턴투신운용의 이정철 상무는 외국인 전용 펀드 가운데 하나인 코리아아시아펀드(KAF)의 운용에 관여하다가 홍콩의 베어링자산운용에서 펀드매니저를 지냈다.
올 6월 삼성증권 리서치헤드가 된 임춘수 상무는 미국 UC버클리대에서 MBA를 받은 뒤 골드만삭스증권에 몸담고 홍콩과 서울에서 리서치를 담당했다. 배움닷컴이라는 인터넷 교육회사를 만들어 독립했다가 2년만에 리서치 업무로 컴백했다.
이남우 전 삼성증권 리서치헤드(상무)는 리캐피탈투자자문을 설립해 독립을 선언했다. 시카고대 MBA인 그는 대우 JP모건 쟈딘플레밍증권 등에서 애널리스트를 지냈다. 국내 최초 합작 증권사인 동방페레그린증권에서 리서치헤드를 지낸 뒤 삼성증권으로 옮겼다.
이재우 리만브러더스증권 한국대표도 홍콩 출신. 씨티은행 홍콩에서 근무하다 외환위기 때 굿모닝증권을 샀던 H&Q코리아 대표를 지냈다.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의 남종원 대표와 김동열 상무도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집행임원(MD·Managing Director)까지 오른 실력파다. 한미은행에 투자한 칼라일의 김병주 회장과 LG카드에 투자한 워버그핑커스의 황성진 상무는 개인자산(Private Equity) 투자쪽의 거물이다.
▽홍콩에는 누가 있나〓현재 홍콩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으로 가장 주목을 받는 사람은 김헌수 메릴린치증권 상무(아시아 리서치헤드)와 황성준 CSFB증권 상무(아시아 리서치헤드), 그리고 윤치원 UBS워버그증권 상무(아시아 주식·파생상품헤드) 등. 김 상무와 황 상무는 미국의 시카고대 MBA 동문이며 윤 상무는 미 MIT대에서 MBA를 받았다. 이들은 외국계 증권사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집행임원까지 올랐다. 특히 한국은 물론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등 10여개 국가를 모두 관장하는 아시아 헤드를 맡고 있다.
펀드매니저로는 쟈딘플레밍자산운용의 데이비드 최가 대표적인 인물. 그는 1999∼2000년 한국 증시가 활황을 보였을 때 현대증권과 서울증권에서 잠시 머물렀지만 다시 홍콩으로 건너갔다. 영국계 생명보험회사인 스탠더드라이프의 오선희 이사는 동양증권에서 애널리스트를 하다 펀드매니저로 변신했다. 코리아펀드(KF)와 해외전환사채(CB) 등을 싱가포르의 투자회사인 얼라이언스캐피털에 팔러 갔다가 펀드매니저로 특채된 이력을 갖고 있다. 채권 펀드매니저로는 UBS워버그의 홍준기 상무가 눈에 띈다. 그는 아시아 헤드로 채권 운용을 하다 미국으로 자리를 옮겨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채권 투자를 책임지고 있다.
메릴린치증권 이원기 상무는 “국제금융시장은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곳”이라며 “앞으로 10∼20년이 지나면 한국 사람도 국제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에 버금가는 강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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