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서비스드 레지던스’ 아시나요

  • 입력 2002년 7월 10일 17시 19분


미국 모 컨설팅회사 직원 로빈 더쳐(46)는 올 2월부터 서울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미국 본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아파트 장만은 포기했다. 호텔도 싫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고 남의 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주방있어 직접 요리 가능▼

더쳐씨가 짐을 푼 곳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크우드 프리미어’.

오전 6시면 체육관에서 헬스와 수영을 한 뒤, 방에서 식사를 직접 해 먹는다. 출근은 숙소에서 도보로 10분 떨어진 아셈타워로 한다. 간혹 숙소 내 비즈니스센터를 이용해 업무를 보기도 한다. 퇴근 후에는 회사 동료와 함께 숙소 안에 있는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신다.

다시 미국 본사로 발령을 받더라도 몇 가지 옷가지만 챙겨서 떠나면 된다. 오크우드에는 식기부터 TV에 이르기까지 가구와 일용품이 준비돼 있기 때문에 별다른 짐이 필요없다. 입주할 때도 옷가방 하나면 충분하다.

외국인 투자가 개방되면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늘자 이들을 겨냥한 새로운 중장기 주거 형태가 생겨나고 있다.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콘도나 아파트처럼 식사도 해 먹을 수 있다.

외국에서는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라고 불리는 이 주거 형태가 한국의 사랑방 문화를 바꾸고 있다. 이른바 ‘호텔식 아파트’이다.

올 2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문을 연 서비스드 레지던스 ‘오크우드 프리미어’ 건물(위)과 내부 인테리어. [사진제공 오크우드 프리미어]
▽서비스드 레지던스란?〓1988년 스위스그랜드호텔(현 그랜드힐튼서울호텔)이 문을 열면서 호텔 건물 외에 한국에 오래 머무는 외국 비즈니스맨들을 겨냥해 서비스드 레지던스를 처음으로 건설했다.

호텔과 똑같은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되 ‘내 집’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주거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호텔 객실보다 평수를 크게 해 넓은 거실과 주방을 만들었다. 수영장이나 산책로 등 호텔 부대시설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냉장고 TV 침대 등 가구 제공은 기본.

90년대 중반까지 스위스그랜드호텔 레지던스의 인기는 평균 객실 점유율이 90%를 넘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50∼60%대로 떨어졌다. 비슷한 형태의 경쟁업체가 속속 나타났기 때문.

이미 5개의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영업 중이고 분양 중 또는 건설 중인 시설도 10여곳에 이른다. 최근에는 오피스텔까지 ‘외국인 임대전용’ 혹은 ‘호텔식 서비스’를 내걸어 경쟁에 뛰어들었다.

▼객실크기 14∼50평형 다양▼

현재 운영 중인 곳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밀라텔 오퓨런스’(서울 서초구 서초동)가 125실, 규모가 큰 ‘코아텔 쉐르빌’(서초동)은 365실에 달한다. 객실 크기는 14평형부터 50평형까지 다양하다.

▽호텔이지만 호텔은 아니다〓서울 종로구 낙원동 ‘프레이저 스위츠 서울’. 213실을 갖춘 이곳 1층 현관에 들어서면 근사한 호텔이라는 느낌이 든다. 잘 차려입은 직원이 인사를 건네고, 엘리베이터에는 안내원이 있다.

그러나 왠지 호텔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우선 1층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널찍한 로비가 없다. 자그마한 안내 데스크가 있을 뿐. 외국인 투숙객들이 자신의 아파트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호텔식 로비를 없앴다고 한다.

보안도 철저하다. 국제 비즈니스맨을 겨냥한 호텔인 만큼 사생활 보호에 철저하게 신경을 써 87개 공공지역에 보안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현관을 제외하고는 보안키를 꽂아야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시설인 수영장 레스토랑 도서실 등은 외부인이 이용할 수 없다. 투숙객이 가족과 함께 집에서 지내듯 느끼도록 하기 위해 외부인 출입을 철저하게 막는다.

호텔은 주로 2, 3일 정도 묵는 단기 여행객들이 찾는 반면 서비스드 레지던스의 투숙객은 한 달 이상 체류하는 비즈니스맨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객실 주방에서 식사를 직접 해 먹는다. 하드웨어는 호텔이지만 소프트웨어는 아파트인 셈이다.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호텔업협회 최현 국장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과 외국기업 수가 크게 늘고 있어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장기 거주 비즈니스맨들을 대상으로 호텔과 아파트의 틈새를 파고들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기체류 외국인에 인기▼

이를 반영하듯 올 2월 오픈한 오크우드의 투숙률은 한때 95%에 육박했다. 투숙객 중에는 문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머물고 있는 고객도 있다.

네덜란드와 싱가포르의 합작법인인 프레이저 스위츠도 4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문을 연 이래 강북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투숙률이 60%에 이른다.

이에 따라 새로운 업체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신영은 서울 강북 중심가의 다국적 기업이나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국인을 타깃으로 서비스드 레지던스를 짓기로 하고 최근 삼성생명으로부터 종로구 수송동 부지 1900평을 사들였다. 쉐라톤워커힐호텔 등 일부 특급호텔들도 자체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호텔과 서비스드 레지던스의 차이점
특1급 호텔 프레이저 스위츠 서울
매우 넓다. 사람들로 북적인다로비넓지 않다. 조용하다
누구나 이용 가능부대시설투숙객만 이용 가능
대체로 단기(2, 3일)투숙객 체류기간중장기(한달 이상)
침대 화장대 등 숙박에 필요한 기본 시설내부시설숟가락부터 평면TV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시설
침실과 욕실로 구성내부구조침실과 욕실 외에 거실과 주방까지 있음
자료:각 업체

호텔과 서비스드 레지던스 하루 요금 비교
특1급 호텔품 목오크우드
34만원14평 룸 기본요금29만원
평균 12만원식사(3식)평균 3만원
8700원빨래(와이셔츠)5100원
3157원국제전화(미국, 1분 기준)800원
2만5000원인터넷(24시간)1만원
자료:각 업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