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은 지난해에만 660여개가 문을 닫았고 현재 2600여개가 영업 중이다. 몇년 뒤엔 전국적으로 약 500개의 동네 서점만 남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소형 동네 슈퍼마켓 중 약 4000개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99년을 전후해 동네 꽃집 수도 약 5분의 1이 줄었다.
반면 전국의 할인점 수는 이미 200개를 넘어섰다. 지난해 3000개를 돌파한 편의점은 올해말이면 5000개가 넘을 전망이다.】
깔끔한 매장, 저렴한 가격, 첨단 마케팅 기법,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로 무장한 대형 유통업체와 기업형 프랜차이즈가 ‘지역 밀착형 업종’을 흡수하면서 구멍가게들은 말 그대로 위기에 처했다. 구멍가게들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구멍가게의 위기〓소비자가 상품을 접하는 경로가 다양해진 것이 위기의 1차 원인이다.
서울의 동네 빵집은 3년 새 3분의 1이 사라졌지만 할인점 커피전문점 편의점 샌드위치전문점 호텔 등 빵을 파는 곳은 많아졌다. 대부분의 동네 빵집은 보통 하루 50만∼70만원의 매출을 올리지만 비슷한 매장 규모의 할인점 베이커리의 하루 매출은 400만∼600만원이다. 파리크라상 크라운베이커리 뚜레쥬르 등 기업형 프랜차이즈도 이미 전체 매장수의 약 26%를 차지하고 있다.
교보 영풍 서울 등 대형 서점의 점유율은 약 15%. 여기에 이미 점유율이 10%를 넘어버린 인터넷 서점과 할인점 도서대여점 편의점 등도 동네 책방들을 위협하는 경쟁자들이다. 특히 할인점과 편의점의 책은 참고서 잡지 베스트셀러 아동서적 등으로 동네 서점의 주력 아이템과 비슷하다.
대형·기업형 매장은 상품과 원부자재를 대량 구매하므로 값이 싸다. 할인점의 서적은 통상 15%, 꽃과 베이커리도 10∼15% 가량 동네 점포보다 싸다.
동네 빵집이 늘 만드는 비슷한 빵을 구워 놓고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기업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는 본사 차원에서 신상품을 개발하고 전 가맹점이 연결된 웹 포스 시스템(실시간 판매정보 교류망)으로 원가·재고·고객관리를 한다.
▽뭉치자, 구멍가게〓중대한 경영 환경의 변화에 직면한 동네 구멍가게들은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경영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대한제과협회 이덕주 부회장은 ‘뭉치기’와 ‘나만의 특색 갖기’를 구멍가게 변신의 두 축이라고 설명한다.
경기 고양시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세녕씨는 월드컵 기간에 빙과와 음료를 50% 할인해 팔았다. 이밖에도 대형 유통업체의 세일·사은행사 기간이면 비슷한 할인행사를 연다. 이씨가 가격을 싸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에 회원으로 가입해 3000여 품목 중 약 80%를 공동 구매하기 때문. ‘코사마트’라는 협동조합 간판을 사용해 브랜드 인지도도 높였다. 품목 수가 대형 매장보다 적은 것은 ‘디지털 슈퍼마켓’으로 극복했다. 회원사는 온라인을 통해 2만여 품목을 팔 수 있다.
업종별로 ‘구멍가게 뭉치기’를 지원하는 전문업체들도 생겨났다.
전국 150여개 서점이 회원사인 ‘북새통’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사이버 백일장 등 공동 프로모션을 기획, 회원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코리아 베이커리 네트워크’는 신상품을 개발해 전국 자영 베이커리 업체들에 제안하고 경영 컨설팅을 해준다.
▽우리 매장만의 특색을 만들자〓그러나 기업형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구멍가게가 생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객에게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무엇’을 줘야 한다는 것.
일본 도쿄(東京) ‘지오다 서점’은 97년 15평 매장을 50평으로 늘리면서 취급하는 책을 금융·비즈니스로만 제한했다. 대신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관련 책을 일반용, 전문가용 등으로 세분화하는 등 해당 분야에서는 대형 서점보다 다양한 책을 구비했다. 그 결과 ‘큰 서점에서도 찾기 힘든 금융 관련 서적도 치오다에는 있다’는 명성을 갖게 됐다.
부산의 ‘정항우 케익하우스’도 식빵 팥빵 소보로빵 케이크 등 뻔한 아이템에서 벗어나 케이크 전문점으로 특화한 경우. 케이크의 종류가 웬만한 대형 베이커리보다 많아 독특한 케이크를 원하는 소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장 주인의 전문성도 차별화의 요소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독일은 서점원이 되려면 ‘서적 출판 아카데미’라는 전문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며 “‘중국 역사 책은 뭐가 좋아요?’라고 모호하게 묻는 고객에게 딱 맞는 책을 제안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슈퍼마켓협동조합의 김경배 회장은 “기존의 주먹구구식 영업을 하는 영세 점포는 결국 도태될 것”이라며 “소비자의 기대치에 맞춰 동네 점포도 특성화 전문화를 통해 ‘지역 명소화’ 하는 방향으로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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