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들은 3년 동안의 실험 끝에 ‘실데라필’이라는 물질을 만들고 1차 임상시험을 했다. 그런데 복용자 가운데 50%가량이 뜻밖에도 ‘부작용’인 발기증상을 경험했다.
화이자는 아예 이 물질을 발기부전치료제로 바꿔 시험해 봤다. 1주일가량의 첫 시험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약을 더 복용하고 싶다”고 했다. 1994∼97년 4500명 이상의 발기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3차 임상시험을 마친 뒤 199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승인을 받았다. 협심증 치료제 연구로 시작해 만 12년 만에 탄생한 이 약이 바로 ‘비아그라’다.
그 후 2002년 6월 말까지 세계 119개국 2000만명의 남성이 1억회의 비아그라 처방을 받았다. 화이자는 4년 동안 4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신약은 희망이다〓인간이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된 데는 신약의 역할이 크다. 19세기 말 서양인의 평균 수명은 47세였지만 요즘 아기들의 예상 평균수명은 80세를 넘는다. 이는 주로 의약 연구를 통해 질병을 정복해 왔기 때문. 20세기 초에는 암환자 가운데 장기 생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10명 중 4명이 살아남는다.
미국계 제약회사 릴리의 우울증 치료제 ‘푸로작’은 1988년 시판과 함께 정신질환 치료의 새 시대를 열었다. 정신질환을 약물로 치료할 수 없다는 종교계의 반발과 사회적 논란을 거치며 당시 푸로작은 잡지 만화 방송 등에 즐겨 인용되는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되었다.
신약은 제약회사에는 기업경쟁력이다.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세계적인 제약업체로 성장한 데는 ‘잔탁’(위·십이지장궤양 치료제)이라는 히트작이 있었다. 1980년 총매출이 6억2000만파운드(약 1조1500억원)였던 이 회사는 81년 이후 잔탁 만으로 연간 최고 4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신약을 개발하는 데는 수많은 위험과 엄청난 비용이 따른다. 미국 제약협회(PhRMA)에 따르면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평균 10∼15년의 기간과 8억달러(약 1조원)의 돈이 든다.
신물질이 신약으로 이어지는 확률은 5000∼1만분의 1. 수백가지의 물질 중에서 후보물질을 찾아낸 후에도 동물 대상 실험과 1, 2차 임상시험을 거쳐 1000∼5000명을 대상으로 3차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각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독성, 약효부진 등이 발견돼 중단되는 것이 대부분. 시험에 참가하는 환자들의 입원비와 보험료 등을 모두 부담해야 하므로 갈수록 많은 비용이 든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심한섭 부회장은 “황소 뒷걸음질로 쥐를 잡는 것처럼 우연히 되는 것은 없다. 오랜 연구와 투자만이 신약개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화이자 GSK 등 다국적제약사 한 곳이 1년에 투자하는 신약연구개발비만 각각 5조∼6조원가량. 총 매출의 10∼25%다.
▽한국의 신약개발 역사〓한국에서 근대적 의약산업이 시작된 것은 동화약품이 설립된 1897년. 그러나 신약개발은 LG유전공학연구소 설립(1983년)과 물질특허제도 도입(1987년) 이후로 20년이 채 안됐다.
1999년 국내 신약 1호인 SK케미칼의 항암제 ‘선플라주’가 탄생한 후 대웅제약의 당뇨병성궤양 치료제 ‘EGF’, 동화약품의 간암치료제 ‘밀리칸주’, 중외제약의 퀴놀론계 항생제 ‘큐록신정’ 등 지금까지 모두 4개가 신약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은 국내 신약으로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는 팔 수 없다.
LG생명과학은 처음으로 세계적 신약 개발에 도전했다. 1990년부터 퀴놀론계 항생제 ‘팩티브’를 연구개발해 미국 FDA에 신약허가 신청을 했으나 일단 보류 상태.
LG생명과학 양흥준 사장은 “팩티브의 승인을 낙관하고 있으며 이밖에 인간성장호르몬, B형 간염 치료제 등의 신약 승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LG가 세계적 신약개발의 노하우를 익힌 것 자체가 큰 자산이라는 것이 업계 평가다.
▽한국도 비전이 있다〓선플라주를 개발한 인투젠의 김대기 사장(전 SK케미칼 상무)은 “의약산업은 고급 두뇌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어서 한국 실정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한국은 신물질 합성이나 의약디자인에서 세계적인 수준과 효율성을 갖고 있다는 것. 그러나 임상시험의 경험이 부족하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한계다.
따라서 유한양행 녹십자 LG SK 등 신약연구 회사들은 우선 유력한 후보물질을 개발해 다국적 회사에 파는 것으로 수익을 올리면서 점차 임상시험 인프라를 갖춰 나가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생명공학이 미래 유망산업으로 떠오르는 것도 의약산업이 발전해야 하는 이유다. 유전자공학, 단백질공학 등 첨단 바이오산업의 성과는 대부분 신약으로 결실을 보기 때문이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국내외 제약업계 비교(1999년 기준) | ||||||||
구 분 | 세 계 | 선 진 국 | 한국 | |||||
미 국 | 유 럽 | 일 본 | ||||||
의약품 시장 | 360조원 | 120조원 | 100조원 | 55조원 | 5조원 | |||
1위 기업의 매출액 | 30조원 | 30조원 | 15조원 | 6조원 | 3000억원 | |||
연구비 (매출액 대비) |   | 10 - 25% | 10 - 15% | 4 - 5% | ||||
기업당 연구원 수 |   | 500 - 5000명 | 300-2000명 | 20 - 120명 | ||||
신약 연구개발 경험 |   | 60년 | 100년 | 30년 | 10년 | |||
연간 신약개발수 | 41개 | 11개 | 17개 | 10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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