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IT 불법복제 “막아라” “뚫어라”

  • 입력 2002년 8월 15일 17시 35분



무역업을 하는 한재형씨(45)는 미국 출장길에 사온 DVD 타이틀을 보기 위해 플레이어를 켜는 순간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타이틀과 국산 DVD플레이어의 지역코드가 달라 아무런 화면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DVD 지역코드는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이 이권을 지키기 위해 고안한 방법. DVD 타이틀의 사용지역을 제한함으로써 영화 상영일정 차로 인해 특정지역에서 개봉되지 않은 영화가 DVD 타이틀로 먼저 유통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한씨는 DVD플레이어의 지역코드 기능을 해제하면 모든 지역의 DVD 타이틀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가까운 전자상가를 찾아가 문제를 해결했다. 지역코드 기능을 제거하는 ‘코드프리’에 걸린 시간은 단 30여분, 비용은 5만원이 들었다.

불법복제로부터 저작권을 지키려는 정보기술(IT) 업체들의 힘겨운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및 IT 분야 업체들은 디지털콘텐츠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 복제방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복제방지책을 내놓으면 곧 바로 이를 무력화하는 장치가 나와 대책마련에 고민하고 있다.

디지털저작권관리(DRM) 전문업체 비시큐어의 박성준 사장은 “기껏 개발한 기술도 업계와 소비자들의 무관심 속에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불법복제를 막아라〓UIP, 20세기폭스 등 할리우드 직배영화사들의 블록버스터 영화 시사회장에는 요즘 금속탐지기가 감초처럼 등장한다. 관객들이 캠코더나 디지털카메라로 영화를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개봉 이틀 만에 복제파일이 등장했고 ‘스타워즈 에피소드2’는 미국에서 개봉되기도 전에 인터넷에 복제판이 돌았다.

최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결정으로 미국에서는 2007년까지 36인치 이상의 TV에 디지털방송 수신기능과 불법복제 방지 장치가 의무화될 예정. 이에 따라 앞으로 TV 방송을 집에서 녹화하거나 컴퓨터에 저장, 복사하기는 어려워진다.

초고속인터넷과 첨단 정보기기를 이용한 불법복제가 늘어남에 따라 디지털콘텐츠 및 정보기기 업체들도 불법복제를 봉쇄하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소니의 해법〓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PS2)를 전 세계에서 3000만대 이상 판매한 소니의 최대 고민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문제. PS2는 DVD를 저장매체로 쓰기 때문에 이전 플레이스테이션에 비해 불법복제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DVD 복제 비용이 싸지면서 불법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PS2용 DVD 복제게임은 2만원 정도로 5만원대의 정품에 비해 값이 싼 편. PS2에서 불법 복제 타이틀을 돌릴 때 필요한 개조(MOD·Modification)칩은 5만∼16만원이면 설치할 수 있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K) 법무담당 김성현 차장은 “할인점을 제외한 일반 게임유통업체의 10곳 중 9곳은 불법 소프트웨어를 취급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소니는 최근 인터넷 콘텐츠의 불법복제 방지는 물론 재생 시간과 재생 횟수까지 지정할 수 있는 암호화 기술인 ‘오픈MG X’를 선보였다. 이 회사는 플레이스테이션2, 캠코더, 디지털 오디오,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자사 제품을 통해 이 기술을 보급해 세계 표준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치열한 창과 방패의 싸움〓DVD플레이어 제조사들은 국제 규약에 따라 모든 제품에 지역코드 기능을 넣고 있다. 하지만 서울 용산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 등 전자상가에서 판매되는 DVD플레이어 제품은 사전에 코드프리된 것이 대부분이다.

삼성전자 DVD개발그룹 김영한 수석연구원은 “신제품을 내놓기가 무섭게 코드프리 방법이 나돌아 코드프리 행위의 근절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코드프리에 대항해 ‘RCE’라는 강화된 지역코드 기능을 도입했지만 이에 대한 코드프리법도 나와 이 방법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코드프리하기가 어려운 제품은 잘 안 팔리기 때문에 제조사도 코드화 기능에 대해 적극적이기 힘들다. 중국업체 가운데 일부는 아예 지역코드 기능을 넣지도 않은 제품을 만들어 할리우드 영화사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매크로비전’ 신호는 비디오나 DVD 등 상업용 영상콘텐츠에 삽입해 불법녹화를 막는 장치. 그러나 10만∼20만원대 해제장치만 연결하면 간단히 녹화방지 신호를 없앨 수 있다. 이 밖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XP와 오피스XP에 불법복제품을 30일 이상은 쓸 수 없는 정품인증 기능을 선보였지만 인증기능을 제거한 ‘립버전’이 인터넷에 나돌아 실효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방석호 홍익대 교수(법학)는 “디지털콘텐츠 활용이 늘면서 저작권을 둘러싼 저작권 보유업체와 이용자의 분쟁도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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