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TV속 백화점’ 매출 급증 비결은

  • 입력 2002년 9월 24일 17시 38분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에 자리잡은 현대홈쇼핑 녹화장. 18일 오후 3시경 ‘쇼 호스트’가 30분가량이나 압력밥솥을 소개했지만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주문건수는 30여건.

신정아 PD가 시식(試食)을 주문했다. 압력밥솥이 열리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윤기 있는 쌀밥이 보였다. 쇼 호스트가 주걱으로 한번 휘저었다. 갑자기 주문이 100건으로 늘었다. 10분 후 다시 주문량이 줄어들자 신 PD는 흥부전 패러디를 지시했다.

흥부가 구걸하자 놀부 처가 압력밥솥에서 밥을 푸던 주걱으로 흥부의 뺨을 때렸다. 흥부는 주걱에서 떨어진 밥알을 먹으면서 맛있다며 좋아했다. 다시 주문이 200건까지 늘어났다.

신 PD는 이 프로그램에서 목표액인 1억7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2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홈쇼핑 방송기법은 세계적 수준. 올 봄 전 세계 홈쇼핑 매출 1위를 달리는 미국 홈쇼핑업체 QVC가 CJ39쇼핑을 방문해 배워갈 정도다.

일반 공중파방송과는 다른 홈쇼핑방송. 시청자들이 직접 물건을 사게끔 하기 위해 홈쇼핑방송은 독특한 아이디어로 무장돼 있다.

▽일방향 VS 쌍방향〓일반방송과 홈쇼핑의 가장 큰 차이는 ‘일방향’과 ‘쌍방향’이라는 것. 일반방송은 미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정해진 시간에 방송하지만 홈쇼핑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봐 가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홈쇼핑 PD 책상 위에는 모니터가 3, 4개 있다. 그중 하나는 제품 주문을 받는 콜센터 현황을 보여준다. 주문 반응이 좋지 않으면 PD는 프로그램에 변화를 준다. 평소보다 일찍 시식하기도 하고 드라마 패러디를 삽입하기도 한다. 그래도 매출이 낮으면 1시간짜리 방송을 20분 만에 끝내기도 한다.

▽‘영화’를 만들어라〓1995년 8월 첫 홈쇼핑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쇼핑호스트와 제품 관계자가 나와 제품설명을 해 주는 정도였다. 미국 홈쇼핑방송은 아직도 이 수준.

그러나 최근 한국 홈쇼핑은 점점 ‘쇼’처럼 변해간다. 밋밋한 상품 소개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홈쇼핑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이집트 신전(神殿)도 등장하고 심 봉사가 굴비 맛을 보고 눈을 번쩍 뜨는 연출도 한다.

CJ39쇼핑의 의류 판매 프로그램인 ‘패션 시네마’에서는 유명 영화의 한 장면이 방송된다. 이어 당시 배우가 입었던 의상과 비슷한 옷들이 판매된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2700만원어치가 팔린 한 블라우스는 패션 시네마를 통해 방송되자 1억6000만원어치가 팔릴 정도로 패션 시네마는 큰 인기다.

▽상품구매를 높이는 홈쇼핑방송의 비법(秘法)〓쇼핑 호스트가 상품 설명을 너무 오래해서는 안 된다. 시청자들이 설명만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틀면 그때서야 상품구매 전화가 빗발친다. 설명을 늘어놓을 때보다 통상 2∼4배 정도 전화주문이 많다.

음악은 빠른 댄스곡이 선호된다. 올 1월 LG홈쇼핑 PD 60명을 대상으로 ‘구매욕구 증가 음반 추천’을 분석한 결과 팝 댄스곡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 음악이 경쾌하고 빠르면 그만큼 소비욕구도 높아진다.

▽무대와 궁합도 중요하다〓CJ39쇼핑 방송미술팀 이기철 팀장은 “무대 배경은 판매하는 상품과 궁합이 맞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패션 의류를 방송할 때는 무대 분위기는 차분한 편이 좋다. 화려한 옷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대 배경은 차분한 조연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석류를 팔 때는 어두운 조명에 고급스러운 소품으로 꾸미면 좋다. 어두운 조명 아래 보석이 빛을 받아야 더욱 반짝거리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15번 무대를 만들죠. 1세트를 꾸미는 데 겨우 30∼40분 정도 주어지니까 항상 시간에 쫓깁니다. 지난번 보석 판매에서는 세트가 부실했어요. 가구와 집기가 명품 이미지를 받쳐주지 못했거든요. 그랬더니 매출이 평소의 3분의 1 정도로 뚝 떨어지더군요.” 이 팀장이 경험한 무대배경과 매출액의 상관관계다.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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