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사회사와의 최종회의를 마치고 나온 두루넷 나스닥 상장 실무팀원들은 깊은 감회에 잠겼다. 상장가가 18달러로 결정돼 하루 뒤면 한국 기업 최초의 나스닥 직상장 꿈이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코드명 ‘KOREA’. 한국의 대표주식이라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종목코드로 쓴 두루넷의 주가는 한때 84달러까지 치솟아 한국 정보기술(IT) 기업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는 듯했다.
하지만 달콤함은 잠시. 두루넷의 주가는 1년도 못 가 10달러 밑으로 추락했다. 나스닥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주가하락 행진은 계속돼 14일(현지시간) 현재 나스닥 시장의 두루넷 주가는 1달러도 못 되는 0.26달러.
이 같은 상황은 비슷한 시기에 주식예탁증서(DR) 발행을 통해 나스닥에 진출한 미래산업과 하나로통신도 마찬가지.
신호주 코스닥증권시장 사장은 “한국 기술주의 나스닥 부진은 한국 IT 기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킬 수 있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국 기술주, 무너진 나스닥 꿈〓두루넷은 최근 나스닥 심사부로부터 퇴출 경고를 받았다. 앞으로 11월 5일까지 주가가 1달러 이상인 날이 10거래일을 넘지 못하면 나스닥 상장을 폐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삼보컴퓨터와 KDS의 자회사인 이머신즈는 2001년 5월 똑같은 이유로 나스닥 시장에서 퇴출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머신즈는 상장 초기인 2000년 주가가 9달러선까지 육박했지만 1년여 만에 나스닥 항해를 마감했다. PC경기 침체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1달러 밑으로 폭락한 주가를 끝내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스닥에서는 주가가 5달러 밑으로 떨어진 ‘페니주식(Penny Stock)’은 투자가치를 상실한 것으로 여겨져 거래조차 잘 이뤄지지 않는다. 나스닥 시장은 특정 종목의 주가가 30거래일을 연속해 1달러를 밑돌면 해당 업체에 상장 폐지를 경고한다. 경고 후에는 90일 동안 주가가 1달러를 회복하지 못하면 퇴출시키는 제도를 두고 있다.
김상우 두루넷 전무는 “설사 나스닥에서 밀려나더라도 나스닥 장외시장(OTCBB)에서 주식거래가 이뤄진다”고 밝혔다.
▽한국 기술주 왜 부진한가〓나스닥 한국 기업이 퇴출위기에 몰린 가장 큰 원인은 세계적인 기술주 폭락에 있다. 나스닥 지수는 올 들어 기술주 폭락의 영향으로 6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나스닥 시장에서 유독 한국 기술주의 낙폭이 크고 거래대상으로서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강조한다. 투자자들이 한국의 기술주를 외면하는 것은 수익 구조에 대한 확실한 비전 제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증권 시장에 대한 경험 및 이해 부족으로 기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못한 점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배영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업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기업가치 관리에 많은 역량을 배분해야 하는 등 나스닥 상장에는 부담도 적지 않다”며 “나스닥은 주주들에게 신뢰와 비전을 주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시장”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도전은 계속된다〓99년 두루넷이 나스닥상장을 통해 조달한 외자는 모두 1억8000만달러. 금융컨설팅 업체인 월드캐피탈코리아 배이동 사장은 “해외상장을 통한 자본 조달은 국내 증시의 물량부담을 줄이고 국내 간접금융 의존도를 낮추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나스닥 상장회사가 되면 자연스럽게 투명한 선진 경영시스템을 배울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나스닥 도전은 올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연말까지 나스닥 등 해외증시에 상장될 기업이 최소 1, 2개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통부는 국내 IT기업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지원하기 위해 1억달러 규모의 ‘코리아글로벌 IT 펀드’를 만들어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금융감독원과 증권예탁원은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해외증시 상장을 희망하는 기업을 적극 발굴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KTB네트워크, 한국기술투자 등 벤처캐피털 업체도 한국 기업의 나스닥 진출을 돕는 ‘나스닥펀드’ 설립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배 사장은 “‘나스닥 상장〓국내 주가상승’이라는 등식은 이미 깨졌지만 나스닥은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기업 인지도와 공신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밝혔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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