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외국계 펀드사 한국전략, 알아서 vs 본사지시

  • 입력 2002년 11월 4일 17시 30분



“생각은 지역특성에 맞춰, 행동은 현지사정에 따라(Think regionally, act locally).”

10월22일 굿모닝투신운용을 인수한 프루덴셜코퍼레이션아시아(PCA·영국 프루덴셜의 아시아지역 지사)의 마크 터커 회장은 한국시장에서 활동하기 위한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시아 지역의 특성에 맞춰 생각하고 한국 현지 실정에 맞게 행동하겠다는 것. 터커 회장은 한국 지사가 펀드 운용과 경영에 폭넓은 재량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현지화 전략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가 대주주인 6개 투신운용사 가운데 2개는 현지화, 나머지 4개는 글로벌 전략을 택하고 있다.

▽한국에 가면 한국식으로〓경영학에서는 외국에 진출한 회사가 현지 상황에 맞춰 적응하려는 노력을 ‘현지화’ 또는 ‘다국가(multidomestic)’ 전략이라고 부른다.

6개 외국계 투신운용사 가운데 PCA투신운용(가칭)과 랜드마크투신운용이 이 전략을 취하고 있다.

두 회사는 ‘고객의 소리를 잘 듣고 이해한다’거나 ‘합리성과 투명성’이라는 본사의 경영 철학만 따를 뿐 나머지는 대부분 현지 지사가 알아서 결정한다.

김종태 PCA투신운용 상무는 “PCA는 일본 대만 등 아시아 11개국에서 현지화 전략으로 성공했다”며 “현지 시장의 관습 법규 등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랜드마크투신운용의 최홍 사장은 구체적으로 세 가지 이유를 역설했다. 우선 현지 사정에 맞는 기준으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

“외국계 회사는 주로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사실 영어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증권인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훌륭한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가 영어를 잘 못할 수 있지요. 영어도 잘하고 일도 잘하면 몸값이 비싸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는 한국 증시와 투자자의 특수성도 현지화가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변동이 심한 한국 증시에서 장기투자만을 외칠 수도 없고 스스로 자산배분을 할 능력이 없는 고객이 70% 이상인 점도 마케팅을 할 때 고려해야 될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선진 운용원칙 고수해야〓나머지 4개 회사는 본사의 펀드 운용 철학과 원칙을 고수하고 본사와 지사가 긴밀하게 연결된 ‘글로벌 전략’이나 글로벌 및 현지화 전략을 동시에 추구하는 ‘초국가(transnational)전략’을 쓰고 있다.

가장 먼저 국내에 진출한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은 내재가치보다 싼 주식을 사 오래 보유한다는 본사의 ‘장기 가치투자 전략’을 엄격하게 고수해 왔다.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은 50% 지분을 가진 하나은행이 마케팅 부분을 맡지만 펀드 운용철학과 원칙은 50% 대주주인 독일알리안츠그룹을 따른다.

이광 마케팅팀장은 “상품마다 벤치마크와의 거리를 좁히고 리서치에 근거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 운용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슈로더투신운용은 본사의 원칙에 따라 3개월 만기 펀드 등 단기펀드는 취급하지 않는다.

영어가 공용어이고 일부는 외국인이 사장을 맡고 있는 것이 특징.

펀드 운용, 경영, 고위직 인사 등에서 지사는 지역본사 및 본사와 긴밀히 보고하고 지시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도이치투신운용은 싱가포르 지역본사에 거의 모든 것을 보고한다.

▽현지화냐 글로벌화냐〓두 가지 전략 모두 장단점이 있다. 현지화 전략의 장점이 유연성에 있다면 글로벌 전략의 장점은 선진투자기법 등 혁신을 활용하는 능력과 규모의 경제다.

증권시장과 자산운용산업에서 어떤 전략이 좋다는 정설은 없다.

다만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의 ‘한국시장 적응기’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

템플턴그로스 펀드들은 1999년 정보기술(IT)주 버블 당시에도 내재가치에 비해 턱없이 비싸 보였던 벤처주식에 투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익률이 다른 펀드에 비해 저조했고 “왜 벤처 주식을 사지 않느냐”는 투자자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버블 붕괴를 피해갈 수 있었고 그동안 싸게 사 모은 진짜 가치주들의 값이 오르면서 2001년 이후 펀드 수익률이 업계 최고로 치솟았다.

현지화 전략을 택한 두 회사는 신생사여서 앞으로 자신들이 토종 투신사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어야 할 부담을 지고 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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