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두고 20세기의 대표적 경제사상가인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식인일수록 남의 태도에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 널리 쓰이는 지금 ‘남의 태도’는 온라인으로 즉시 공개되고 있다. 나의 생각 역시 클릭과 동시에 가공돼 남들 앞에 뜬다. 인터넷에서 ‘설문조사’는 흔한 일이 됐다.
한편 설문조사에 응하는 ‘지식인’ 네티즌들이 열심히 자기 마음에 드는 번호를 클릭하는 동안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엿보는데….
▽200만명 대상 조사=포털사이트 엠파스(www.empas.com)는 최근 뉴스 코너를 개편하면서 회원 200만명을 대상으로 e메일 설문조사를 했다. 이 200만명은 전체 회원 1000여만명 중 ‘조사에 응하겠다’고 동의한 수. 엠파스는 뉴스 서비스에서 개선돼야 할 점을 주·객관식으로 물었고 이 가운데 80% 이상이 설문에 응답했다. 200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불과 10일 만에 끝났다.
‘녹색인 메뉴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꿔달라’ 등의 요구에 따라 사이트 색을 바꾸고 뉴스 구입처를 15개 매체에서 26개 매체로 늘렸다.
그런데 단 1명으로부터 ‘상당 수 메뉴가 화면 오른쪽에 배치돼 있어 불편하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의 요구에 따라 상당수 메뉴를 왼쪽으로 옮겼다. 사이트 개편 뒤 방문자의 뉴스코너 체류시간은 종전 7분에서 15분으로 길어졌고 조회건수는 400% 증가했다.
엠파스 콘텐츠팀의 이진희 팀장은 “인터넷 기업은 고객의 요구를 미리 알고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담당자들이 밤새 머리를 맞대며 짜낸 아이디어로 일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경품을 정하세요=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닷컴(www.lotte.com) 등 롯데 계열 유통업체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롯데타운’(www.lottetown.com)이 지난해 오픈과 함께 실시한 경품이벤트 기간에 150만명이 경품에 응모한 동시에 신규회원으로 등록했다. 1등 경품 40평형대 아파트 외에 PDP TV, 명품 반지, 양문형 냉장고 등 갖고 싶은 경품을 직접 선택한 뒤 행사에 응모하도록 했다.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품 품목도 사전 설문조사를 통해 선택했다. 롯데측은 “경품을 직접 고르는 재미가 아파트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다”고 분석.
롯데닷컴 롯데타운 사업부의 경한수 팀장은 “설문조사는 결과를 알기 위한 조사가 아니다. 조사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다”라고 말했다.
▽남은 뭘 볼까=인터넷 DVD쇼핑몰 파파DVD(www.papadvd.com)에는 최근 설문조사(‘2002년 발매된 DVD 중 소장가치가 있는 것’)가 첫 화면에 실리면서 때아닌 품목에 주문이 몰리고 있다.
영화 ‘진주만’과 ‘터미네이터2’는 지난해 초 이후 주문이 월 1, 2건밖에 안 됐으나 설문조사 결과 순위에 오르면서 월 100여개씩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김종래 사장은 “공급자가 제공한 정보는 신뢰도가 거의 ‘제로’(0)다. 물건을 팔려면 신뢰도 높은 ‘동료 소비자’들의 생각을 끌어내 효과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자체를 판다=인터넷업체 NHN은 설문조사 자체를 팔기 시작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www.naver.com)와 게임서비스 한게임(www.hangame.com)의 회원 2000여만명 중 “설문조사에 응하겠다”고 동의한 36만명에게 외부에서 의뢰 받은 조사를 진행한 뒤 조사 규모에 따라 결과를 수십만∼수백만원에 파는 것.
설문지 작성, 조사 대상 패널 선정 등은 모두 인터넷상에서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에 의뢰인은 조사 과정에서 NHN 직원과 접촉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기회와 위험=수백만∼수천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인터넷업체들은 이처럼 실시간으로 파악되는 회원들의 ‘생각’을 활용하면서 사업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대부분의 포털업체는 많은 회원 수를 무기로 여론조사업체 기능도 갖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NHN처럼 일부는 이미 실험을 시작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서치앤리서치의 노규형 사장은 “계량화된 시장과 타자(他者)의 생각이 ‘지식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동시에 역으로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관련 업계는 정보의 신뢰도와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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