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자. 홈쇼핑 원년인 1995년 LG홈쇼핑의 거래액은 13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2년 1∼9월의 9개월간 거래액은 1조3000억원이다. 같은 기간 CJ홈쇼핑은 21억원에서 1조200억원으로 거래가 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TV홈쇼핑의 원조인 미국까지도 한국 홈쇼핑의 비밀을 배우기 위해 방한(訪韓)하고 있다. ‘3류 제품만 판다’며 자신의 제품을 내놓기를 꺼렸던 유명 디자이너도 최근 홈쇼핑을 통해 자신의 의류를 팔고 있다.
이와 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우미’들이 있었다. 왕 옆에는 왕을 만들어주는 ‘킹 메이커’들이 있듯이.
▽홈쇼핑은 첨단 물류기법이 집결된 종합예술〓LG홈쇼핑이 지난해 9월 말까지 2200여명의 직원에게 들인 인건비(급여+복리후생비)는 약 270억원. 거래액(1조3000억원)의 약 2%를 차지한다. LG홈쇼핑이 인건비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분야가 있다. 케이블TV방송국(SO), 택배회사, 그리고 카드회사다.
LG홈쇼핑은 지난해 9월 말까지 SO를 확보하기 위해 약 390억원을 사용했다. 이는 전 직원에게 지불한 인건비보다 100억원 이상 많은 액수. 유선으로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홈쇼핑 방송의 특성상 SO가 없으면 방송을 내보낼 수가 없다. 한국에 케이블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면 홈쇼핑 방송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다.
지난해 같은 기간 LG홈쇼핑이 카드 수수료와 택배 비용으로 지출한 비용은 거래액의 5%에 이르는 약 650억원.
통상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는 고객의 95%는 신용구매를 한다. 카드결제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면 홈쇼핑 거래는 자연히 위축된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홈쇼핑 업체가 우수고객 5위 안에 들 만큼 고마운 존재다.
택배 시스템 역시 홈쇼핑을 성장시킨 1등 공신. 우편으로 물품을 보낼 때 1주일이 걸리던 것을 택배 서비스는 사흘 안에 배달되도록 만들었다. 지방이라도 1주일이면 가능하다. 보통 선진국에서는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씩 걸린다.
택배회사도 92년 27억원이었던 택배시장 규모가 작년 1조4000억원으로 커지는 데는 TV홈쇼핑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삼성증권 한영아 애널리스트는 “한 업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반이 되는 시설이 필수적”이라며 “한국의 홈쇼핑이 외국에 비해 앞설 수 있었던 것은 물류 및 결제 시스템이 홈쇼핑과 공생하며 부가가치를 높인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발상의 전환도〓기업이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도우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인프라 시설은 그대로이지만 사업 구성을 달리했을 때 성장의 탄력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무기기 업체는 복사기, 프린터, 팩시밀리 등 완제품과 종이, 잉크, 토너 등과 같은 주변기기를 함께 판다. 사무기기를 선보인 초창기만 해도 완제품 중심으로 사업이 이뤄졌다. 그러나 점점 주력사업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후지제록스의 지난해 매출구성을 보면 완제품이 48%, 소모품이 52%를 차지한다. 미국의 HP나 일본의 엡손 등 다른 프린터업체들도 비슷하다.
황흥국 한국후지제록스 경영기획실장은 “소모품은 경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팔리는 특징이 있고 일반 완제품보다 수익성이 4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정수기 사업은 사업구조를 뒤집은 뒤 폭발적인 성장을 한 예. 웅진코웨이개발은 1대에 100만원이 넘는 정수기를 1998년부터 10여만원의 가입비만 받고 빌려주기 시작했다. 대신 매달 2만6000∼5만1000원의 관리비를 받았다. 관리비는 정기적으로 정수기를 점검하고 필터를 바꾸는 데 드는 비용. 부담 없이 정수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 1998년 894억원이었던 매출이 2000년에는 2773억원, 지난해에는 73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때론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도 있다. 공짜로 제품을 빌려주었더니 오히려 돈방석에 앉게 된 정수기의 예처럼.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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