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제품의 디자인이나 성능을 바꾸는 ‘튜닝(Tuning)’ 작업을 통해 박씨가 완성한 작품은 의자형 PC. 의자 등받이 쪽에 컴퓨터 본체를, 앞쪽에 모니터와 키보드를 달아 책상 없이도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했다. 모니터에는 터치스크린(화면을 눌러 정보를 입력하는 장치)을 적용했고 아크릴을 잘라 컴퓨터 케이스도 만들었다. 의자와 컴퓨터를 포함한 제작비용은 150여만원. 제작기간은 3주일이 걸렸다.
튜닝 마니아들이 최근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자동차, 컴퓨터, 휴대전화 등 다양한 제품의 튜닝 동호회들이 수백개씩 활동 중이다. 튜닝은 이제 취미 활동을 넘어 산업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늘어나는 튜닝 수요=지난해 대학을 갓 졸업한 성제우(成濟宇·26)씨는 작년 6월부터 휴대전화 튜닝사업을 시작했다. 휴대전화 케이스만 도색해 주거나, LED칩(버튼에 빛을 내도록 하는 장치)을 교체해 발광(發光)색을 바꿔준다. 또 휴대전화에 장식용 큐빅을 박아 착신 때마다 빛이 나도록 하는 튜닝도 인기다. 찰흙 형태로 모양을 만들면 곧 고체로 변하는 ‘에폭시 퍼티’라는 물질을 이용하면 휴대전화 케이스를 인형, 자동차 등 전혀 다른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휴대전화를 통신수단으로만 보지 마세요. 젊은이들에게는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죠.”
성씨는 지금까지 ‘스카이존’이라는 브랜드로 전국 21곳의 프랜차이즈점을 확보했다. 프랜차이즈에 가입하는 사람들에게 초기 장비와 재료비로 500만원을 받은 뒤 1주일간 튜닝기술을 전수해준다. 성씨 가게의 매출은 매월 600만∼800만원.
성씨는 “앞으로 10, 20대 중 절반은 튜닝을 하며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튜닝 산업의 성장 조건은 △제품의 고가화에 따른 사용기간 연장 △개성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 △전문가 수준의 제품 정보를 가진 파워 유저(Power User) 수의 증가 등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崔純華) 수석연구원은 “이 같은 조건들을 충족하는 산업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국내 튜닝 수요도 커지고 있다”며 “2∼3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튜닝 바람이 올해는 산업의 한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튜닝시장을 잡아라=컴퓨터와 휴대전화가 아직 초기 단계라면 자동차 튜닝 산업은 성장 단계에 접어들었다.
전국에 300개 이상의 튜닝업체가 있고 동호회 수는 800개를 헤아린다. 지난해 열린 국내 첫 튜닝카 전문 전시회 ‘부산오토살롱’에는 7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였다. 올해는 산업자원부, KOTRA 등의 후원으로 2월 말과 4월 중순 두 차례의 튜닝카 전시회가 열릴 예정.
국내 자동차 튜닝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하자 해외 업체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최대 튜닝카 전시회 ‘도쿄오토살롱’의 주간사인 선프로스(Sunpros)는 올해부터 부산오토살롱의 공동주최사로 나섰다. 앞으로 부산오토살롱을 관람객 수십만명 규모의 도쿄오토살롱 수준으로까지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 회사 이나다 다이치로 사장은 “한국은 튜닝기술 발전과 수요 증가의 속도가 빠르다”며 “많은 일본업체들이 한국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동차튜닝협회 신정수(申貞洙) 회장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AMG, BMW의 AC슈니처 등 해외 완성차업체들은 튜닝업체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며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해외업체들에 그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림자가 몸통을 흔든다=자동차 튜닝업체 토마토 A&C는 최근 2년간 특수유리섬유인 파이버글라스로 외부 디자인을 튜닝한 싼타페와 투스카니를 내놓았다. 하지만 토마토 A&C의 목표는 더 높다. 현대차 디자인연구실 출신인 김진필(金鎭必) 사장은 “튜닝을 하며 갈고 닦은 실력으로 자동차 전문디자인회사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컴퓨터 튜닝 인터넷 커뮤니티인 코리아모드의 박성철(朴城徹) 운영자도 “대기업의 최신 컴퓨터들을 보면 이미 1∼2년 전 튜닝 마니아들이 시도했던 디자인”이라며 “이들의 아이디어가 국내 컴퓨터 디자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튜닝업이 기존 산업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고 점차 영향력을 키우는 것.
LG경제연구원 배수한(裵水漢) 연구원은 “튜닝은 소비자가 상품 제조기업과 같이 호흡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며 “하지만 튜닝 산업 발전을 위해선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기존 산업과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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