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로봇개발부 김성락(金成樂·공학박사) 부장은 ‘인간 대체’가 아니라 ‘인간과의 공존’이 미래 로봇 세상의 청사진이라고 말한다.
생산라인에서 인간 대신 일을 하는 로봇은 일본 스웨덴 독일 등을 중심으로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한국에선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효성 등이 산업용 로봇을 생산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다.
일본이 10년 후 먹고 살 미래산업 중 하나로 로봇을 선택, 연구 개발에 국가 예산을 배정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는 것을 감안하면 위기감을 감출 수 없다.
▽한국의 로봇산업=국내에서 유일하게 100% 국산 산업용 로봇을 제작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올 초 용접 및 제품이동 5개 모델에서 국제공인 안전규격인 ‘UL(Underwrite Laboratories Inc.)인증’을 획득했다.
UL인증은 미국 보험협회안전시험소에서 주관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안전 규격 인증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현대중공업이 로봇을 만든 것은 86년으로 일본에 20년가량 뒤졌다. 자동차라인에 일본 모델을 쓰면서 로봇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현대그룹 차원에서 로봇개발 연구실을 설립, 86년 용접 로봇 1호를 생산했다. 지금까지 6000여대의 산업용 로봇을 생산했지만 100% 자체 기술로 산업용 로봇을 만들어낸 것은 98년으로 5년밖에 안 된다.
현대중공업이 만드는 산업용 로봇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40% 수준이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3%로 미미한 실정이다. 아직까지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김 부장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섬세해야 한다는 등 로봇 수요자의 요구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로봇을 빠른 속도로 작업 위치로 이동시키는 모터, 이후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감속기 등 주변 부품사업이 함께 발전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크게 뒤처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현대중공업은 2010년까지 산업용 로봇 월 평균 생산대수를 1만대로 늘려 세계 3대 로봇 메이커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최근 중국을 다녀온 기술개발본부 운영지원부 이보홍(李輔洪) 부장은 “철강, 자동차, 전자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 이르면 5년 내에 중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로봇 개발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면 한국의 제조산업은 몰락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과 공존하는 로봇=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로봇은 어느새 사람들의 생활 곁에 바짝 다가서 있다.
집안 구석구석을 스스로 돌아다니며 청소하는 로봇청소기는 비록 수입품이지만 이미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최근 가족, 친척 등 가까운 사람을 알아보고 간단한 대화도 할 수 있는 가정용 로봇 ‘와카마루’를 개발했다.
사람 모양의 이 로봇은 내년 4월 판매 예정. 노인이 욕실에서 오래 나오지 않거나 외부인이 침입하는 등 위기 상황 때 가족에게 e메일이나 전화로 즉각 알려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미쓰비시는 일본에 독거노인이 늘고 있어 연간 1만대 이상 팔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대장(大腸) 안을 의사 지시를 받아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진단하는 대장 내시경 로봇이 개발돼 임상실험 중이다. 또 미국 럿거스대 해양관측연구실은 적조를 예보하는 잠수로봇을 개발, 올 초 멕시코만에서 여러 자료를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연구 개발이 활발하고 일부는 상품화를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초 장거리 미사일에 적용되는 항법장치와 비슷한 기술을 적용, 적외선 탐지기로 공간을 가늠한 뒤 스스로 이동 경로를 찾는 로봇청소기를 개발했다.
벤처기업 로보텍은 최근 사람을 태우고 걷는 로봇말 ‘제모스’를 개발, 내년 5월부터 골프장을 중심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꿈이 이뤄진다면 골퍼들은 전동카트 대신 네 발로 걷는 로봇말에 골프채를 매달고 다닌다.
이 밖에 로봇 영어교사와 로봇 비서도 아직 초보 단계지만 속속 개발이 완료돼 시장 판매를 기다리고 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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