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이 상품을 지배한다=인터넷업체 NHN에서 일하는 이동진(李同鎭·26)씨는 3년째 ‘자동차동호회연합’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1999년 첫 차를 사면서 시작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2000년 80여개의 인터넷 자동차동호회 운영자들을 하나로 묶는 이 사이트 개설로 이어졌다.
각 동호회의 회원 수를 모두 합치면 20만여명. 신차 개발 동향을 언론보다 먼저 알고 있는 마니아도 많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의견을 교환하고 차를 평가한다. 이들의 평가는 각 자동차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고 이는 곧바로 판매에 영향을 준다.
“쏘렌토가 언론에 공개되기 전 기아차에서 우리 회원 20여명을 공장으로 초대했어요. 당시 품평회에서 회원들이 시트의 강도, 차 문의 끝처리, 스피커 성능 등을 지적했는데 판매차량에 그 부분들이 조정됐더군요. 우리도 쏘렌토 성공에 일조한 셈이죠.”
이씨는 최근 지원비를 주겠다는 자동차회사들의 제의를 거절했다.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디지털카메라 정보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선 네티즌들이 상품 평가를 넘어 각 상품의 유통망까지 바꾸고 있다.
이 사이트 ‘유저(user) 구입기’ 코너에는 네티즌들이 직접 경험한 여러 카메라 판매점의 친절도, 가격 할인에 대한 내용이 빼곡하다.
디시인사이드측은 “최근 남대문시장이 새로운 카메라 구입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네티즌 때문에 비싸고 불친절한 유통망을 가진 상품은 시장에 발붙일 수도 없다”고 말했다.
▽기업의 성패, 네티즌 관리에 달렸다=네티즌들의 힘이 커질수록 이들을 감싸안으려는 기업들의 노력도 더해간다.
게임업체 손노리는 자사의 인터넷 동호회 ‘팬노리’와 ‘손노리티’에 컴퓨터 서버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손노리 관계자는 “동호회 회원 대부분이 우수한 베타 테스터(beta tester·개발단계의 상품평가자)로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 수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카메라업체 올림푸스코리아는 유료 인터넷 사이트에서 활동 중인 자사 동호회에 사이트 유지비를 지원하고 있다. 동호회의 야외촬영 행사 때는 메모리칩, 배터리, 인화권 등을 무료 제공한다. 올 초엔 모 동호회의 운영자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회사측은 “네티즌들의 호응이 없으면 아무리 고성능 신제품이라도 성공할 수 없다”며 “얼마나 많은 우호 네티즌을 확보하느냐가 각 회사들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현대차는 자사 홈페이지에 소속된 동호회 10곳에 대해 매년 1000만원 이상을 지원한다.
▽네티즌이 키우는 회사=몇년 전만 해도 기업들은 네티즌을 ‘불만투성이의 성가신’ 소비자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네티즌들은 기업 발전의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선다.
비디오폰 및 PC카메라 업체인 코콤은 지난해 네티즌 10여명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330만 화소대 고화질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다.
미래 수익사업인 고화질 디지털카메라의 노하우를 개발 작업에 참가한 마니아 네티즌들로부터 얻은 것.
‘기능이 부족하고 화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로 고심하던 디지털카메라업체 삼성테크윈은 지난해 네티즌들과 함께 개발한 디지맥스 350SE를 발표한 이후 ‘외국 제품과 겨룰 만하다’는 평가를 얻기 시작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崔純華) 박사는 “갈등과 긴장으로 얽혀 있던 네티즌과 기업 간의 관계가 최근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네티즌이 우수한 기업을 키우고, 기업이 똑똑한 네티즌을 지원하는 사이 국내 기업의 경쟁력도 절로 높아진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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