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은 틀리기 쉽다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내년에 유행할 상품은 무엇인지, 어떤 것이 표준이 될 것인지…. 기업 경영 현장의 하루하루는 각종 예측과 그에 따른 계획의 연속이다.
그러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1968년 독일의 공학자 디트리히 브라이스가 발표한 ‘브라이스의 역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단순한 예측도 틀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사례다. 그는 몇 년에 걸친 연구 끝에 고속도로를 확장하는 것이 늘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아니며, 가끔씩은 혼잡을 가중시키는 경우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로가 늘면 운전자가 차로를 바꾸려는 욕구가 더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최근 과학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복잡성(complexity)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개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움직일 경우 전체의 움직임이 어느 쪽으로 흐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수많은 개인이 참여하고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주가의 움직임은 복잡성의 대표적인 사례다.
증권가의 내로라 하는 분석가들도 상승과 하락을 알아맞히는 확률 50%의 게임에서 숱하게 틀린다. 오죽하면 주가는 술 취한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취보 이론(random walk theory)’까지 나왔을까.
#새로운 기법
에이전트 기반 모형(agent-based modeling)은 이 같은 복잡성을 감안해서 개체의 행위를 실제 상황에 유사하게 프로그래밍한 다음 컴퓨터를 통해 모의 가상실험(시뮬레이션)을 해보는 방법이다. 수학 공식으로 풀 수 없는 동적인 상황을 예측할 때 쓸 수 있다.
컨설팅업체인 캡 제미니 언스트 앤드 영은 최근 휴렛팩커드(HP)의 조직 변화 프로젝트를 맡았다. HP는 ‘종업원의 충성도’를 가장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삼는 회사로 유명하다.
HP의 경영진은 서비스 부문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후 충성도는 낮지만 그 방면에 경험이 많은 컨설턴트들을 상당수 뽑아 조직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기존 직원들의 충성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에이전트 기반 시뮬레이션 결과는 놀라웠다. 충성도가 높았던 직원들의 이직을 부추겨 회사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 그 결과 회사 전체의 지식 수준 역시 오히려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HP는 결국 몇 년에 걸친 점진적인 변화를 선택했다.
#틀리지 않는 예측의 비결은?
기사 머리의 내기에서는 누가 이겼을까.
삼성전자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예상대로 약 12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시장 규모는 20억달러를 훌쩍 넘었다. 권위 있는 시장조사기관의 예측은 빗나갔다.
매출 규모처럼 수치를 예측하는 것은 추세를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특히 플래시 메모리처럼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되는 제품이 아니라 부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플래시 메모리는 휴대전화와 카메라, 캠코더 등 다양한 디지털 제품에 쓰이는 반도체다. 각각의 가전 완제품이 내년 시장에서 얼마나 팔릴지, 어떤 새로운 제품이 나올지 알 수 있어야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의 수요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환경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 삼성처럼 기술력과 양산 능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면 가능하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준영 부장은 “최근 전자 부품의 수요는 기술 발전의 속도와 관련이 있다”면서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고속 메모리반도체인 DDR 제품을 언제 내놓느냐 등에 따라 관련 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시기가 달라지며 소비자의 수요도 바뀐다”고 설명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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