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1980년 컬러TV가 경기 상승을 이끌었던 것처럼 디지털 TV로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의 부족, 전송방식 논란 등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컬러 TV의 교훈=1980년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컬러TV 방송을 본격 실시했다. 금성사(현 LG전자)나 삼성전자 등 가전업체들은 1976년부터 컬러 TV 방송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컬러TV 방송은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강력한 반대로 실시가 늦어지고 있었다.
컬러 방송이 시작되자 흑백 TV 수상기의 교체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내수경기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수출도 급속히 확대돼 한국산 컬러TV는 80년대 초반부터 미국 시장 등에서 매년 덤핑조사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컬러TV의 경험을 교훈 삼아 디지털 TV를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 TV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세계 시장도 확대되고 있어 4, 5년 이상 내수와 수출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미국 정부도 2007년 7월 이후 디지털 튜너가 없는 TV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시킬 정도로 디지털 TV의 경제적 효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경남(李慶南) 연구원은 “디지털 TV 시장은 세계 전자업계의 판도를 바꿀 만큼 방대하며 산업연관 효과도 크다”면서 “제조업체들이 빨리 내수기반을 확충하고 수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볼만한 콘텐츠가 없다=“‘여름향기’나 ‘옥탑방 고양이’ 같은 미니시리즈를 HD화질로 16대 9 비율 대형 화면에 꽉 채워 보면 얼마나 좋을까?”
디지털 TV를 구입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품어 봤을 생각이다. 지난해부터 KBS MBC 등은 매주 13시간 정도 HD TV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하고 있다. 그러나 DVD보다 2, 3배나 선명한 화질을 볼 수 있는 지상파 HD 방송은 심야시간대의 토론 프로그램이나 음악 프로그램, 1회성 특집 드라마 등이 대부분. 세트나 분장 등을 완전히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미니 시리즈 등은 제작비용이 일반 프로그램에 비해 1.5∼4배나 들기 때문이다.
MBC의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디지털 TV가 100만대 이상 보급됐다고 하지만 실제로 디지털 방식으로 수신 가능한 수상기는 이보다 훨씬 적다”면서 “방송사 수익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그램을 HD로 제작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김성환(金成煥)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디지털 TV 판매가 크게 늘어난 주요 원인이 HD로 중계된 월드컵 축구경기였을 정도로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 제공은 디지털 TV 보급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소니나 마쓰시타(파나소닉) 등 일본의 디지털 TV 제조업체들이 방송 제작비의 일부를 분담해 콘텐츠 개발을 돕고 있다는 것.
김 연구원은 “‘한류(韓流) 열풍’이 불고 있는 중국, 동남아, 일본 등은 디지털 TV의 시장이기도 한 만큼 팔릴 가능성이 높은 드라마 등은 제작단계부터 제조업체와 방송사, 광고주 등이 공동보조를 취해 HD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TV 판매 등과 연계시키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체적 산업전략 필요=정보통신부는 1997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한국의 디지털방송 전송방식을 미국식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미국식으로 송출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MBC는 이동수신이 잘 안 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유럽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KBS도 전송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관련 업체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의 이광렬(李光烈) 수석연구원은 “디지털 TV 제조업체나 관련 부품업체 등이 미국식에 맞춰 투자와 개발을 끝냈고 미국식을 수신할 수 있는 디지털 TV가 이미 많이 보급됐다”면서 “지금 전송방식이 바뀌면 기업과 소비자가 엄청난 혼란과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는 디지털 TV가 앞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수출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해 전송방식 등을 포함, 업계와 방송사 등의 의견 차이를 조율해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산업전략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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