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출판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 입력 2003년 8월 3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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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든 책이 외국에서 잘 팔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국산 드라마나 영화는 동남아에서 ‘한류(韓流) 열풍’을 불러일으킬 만큼 인기다. 그에 비해 출판산업은 엄청난 저작권 역조(逆調)다.

이 같은 흐름을 뒤집어 놓는 책이 있다. 청소년 과학책 ‘노빈손 시리즈’다.

최근 한국의 출판산업도 ‘글로벌 비즈니스’로 성장할 가능성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9년 전 아기 분유를 살 돈이 없어 고민하던 작가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로 4억5000만달러(약 5400억원)를 벌어들여 영국 여왕보다 더 부자가 됐다고 한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세계로 팔리는 노빈손=‘노빈손 시리즈’는 국내 판매 100만부를 넘어선 베스트셀러다. 최근 12권째인 ‘노빈손, 피라미드의 비밀을 풀어라’를 내놓았다.

2001년부터 일본 대만 중국 등에 이 책의 저작권이 팔리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해리 포터 판권을 갖고 있는 스콜라스틱 출판사, 영국 수위의 출판그룹인 펭귄 등과 영어판 판권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7% 정도인 인세 외에 계약금 형태로 받는 선(先)인세로 일본판은 120만엔(약 1200만원), 대만과 중국에서 각각 2000달러(약 240만원)을 받았으며 영어판 선인세는 이보다 훨씬 높아질 전망.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해리포터 시리즈 최신판인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국내 수입 선인세는 1만5000달러(약 1800만원) 수준이다.

이 시리즈가 해외 마케팅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로는 작가 박경수씨의 아기자기한 문체, ‘엽기적’이면서 높은 흡인력을 지닌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씨의 그림 등이 꼽힌다. 그러나 무엇보다 해외 진출을 의식해 과학상식이라는 보편적 소재를 선택하고 배경도 아마존, 버뮤다 등으로 세계화하는 등 기획력의 승리였다는 평가.

노빈손을 펴낸 뜨인돌의 박철준(朴喆俊) 부사장은 “기획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한국의 출판계도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서 “언어적 뉘앙스 차이를 극복하기 힘든 순수문학보다는 과학책 등 비소설 분야가 해외 진출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한류 열풍과 정보기술(IT) 타고 수출 확대=사실 출판저작권 수출은 노빈손시리즈가 처음이 아니다. 저작권 수출은 지난 몇 년 사이 소리 소문 없이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0년 들어 지금까지 해외에 저작권이 팔린 책은 100종을 조금 넘었다.

영화 ‘국화꽃 향기’의 원작소설인 국화꽃 향기(김하인·생각의 나무)는 2001년 일본과 중국에 수출돼 일본에서만 30만부가량 팔렸다. 또 한류 열풍에 힘입어 KBS의 드라마 ‘겨울연가’의 소설판은 일본에, SBS 드라마 ‘올인’의 원작소설 ‘올인’도 중국과 대만에 각각 저작권이 수출됐다.

영진닷컴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일본 인도 캐나다 등에 컴퓨터 관련 서적의 저작권을 팔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는 국내에서 제작을 마친 ‘완제품 형태’의 책을 수출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인터넷서점인 아마존에서 컴퓨터 그래픽 분야 도서 중 판매 상위 20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2001년 일본 중국 대만에 팔린 어학서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정찬용·사회평론)는 4권이 출간된 일본에서만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영어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국가에서 호소력을 발휘한 역설적 제목과 기획력이 성공한 경우.

한국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의 성공 비결을 담은 ‘한국 대기업의 리더들’(동아일보 경제부·김영사)은 중국에,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 회장을 소개한 ‘삼성 이건희’(홍하상·한경BP)는 일본에 수출돼 한국 경제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 줬다.

▽출판 수출이 잘 되려면=프랑스 캐나다 아일랜드 등 자국 문화의 수출에 열심인 나라들은 자국 출판물이 해외에서 출간되면 현지 대사관이나 문화원을 통해 번역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해외의 바이어들이 자국 출판물 수출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인터넷사이트와 카탈로그를 정부가 앞장 서 제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 정부의 출판 수출 지원 수준은 걸음마 상태. 국내 출판물 수출에 집중하고 있는 저작권 에이전시 북코스모스의 최종옥(崔琮沃) 사장은 “한국 문학계나 정부는 ‘노벨 문학상’에 대한 욕심 때문에 수출로 연결되기 힘든 순수 문학작품의 번역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 출판신문과 박광무(朴光武) 과장은 “올해 처음으로 순수문학을 제외한 우수출판물 번역 지원 사업을 시작해 8월 초 30여종의 출판물에 6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며 국내 출판물을 외국에 소개할 영문 사이트 개설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빈손 시리즈의 영어판 저작권 계약을 대행하고 있는 ‘에릭양 에이전시’의 양원석(梁元錫) 사장은 “미국이나 유럽시장에 책을 팔려면 완전히 다른 수준의 기획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영세한 출판기업의 규모를 대폭 키우고 편집 및 일러스트 인력도 크게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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