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금융실명제 10년 공과

  • 입력 2003년 8월 11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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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8월 12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전격 시행된 ‘금융실명제’가 10주년을 맞았다. 금융실명제는 당초 검은돈 거래를 완전히 없애고 조세 정의도 실현해 줄 것으로 기대됐지만 아직까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북(對北) 비밀송금 과정과 굿모닝시티 사건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여전히 어두운 돈이 활개를 치고 있다. 게다가 실명제의 한 축을 이루는 ‘개인의 금융정보 보호’가 정부기관의 과도한 정보 요구로 위협받고 있고 금융실명제 실시에 따른 금융소득 종합과세도 제도적으로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과 형평 과세를 통해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10년을 맞은 금융실명제의 공적=금융실명제는 82년 7월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9월 금융실명제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그 해 12월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86년 이후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에 시행한다’는 것으로 후퇴했다. 실명제 반대론자에게 밀린 것.

결국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한다. 이후 97년 12월 긴급명령은 법률로 대체됐고 2002년 3월 금융비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추경호(秋慶鎬)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은 “실명에 의한 금융거래 관행이 다져졌고 신용거래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며 “정치자금과 불법자금 수수 등 사회부조리를 적발 또는 예방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평가했다.

▽마구 새나가는 개인 금융정보=국세청 법원 검찰 등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은행에 요구하는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는 연 300여만 건을 넘고 있다.

금융실명제법은 구체적 금융거래를 적시하고 이 거래의 직전거래와 직후거래만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계좌 명의인의 계좌 정보 전체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금융기관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신동진(申東鎭) 신한은행 개인고객부 부부장은 “정보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개인의 금융정보를 무리하게 요구하는 사례가 많고 감독기관은 실명제 위반인 줄 알면서도 무소불위(無所不爲)로 금융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창식(李暢植) 우리은행 개인상품개발팀장도 “은행 직원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보완이 이뤄지되 과도한 개인의 금융정보 유출 문제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실명제의 한 축인 개인의 금융정보 보호를 위해 정치권이나 수사기관이 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나 마구잡이로 개인의 금융정보를 빼내 편의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또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공평과세는 금융실명제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인 만큼 세제 개혁을 통해 공정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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