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람들은 비대해진 기금을 그렇게 부른다. 올 11월 말 현재 운용 기금 규모는 110조2519억원. 활동 무대인 국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이제 비좁다. ‘고래와 트레일러’의 고민은 갈수록 심해진다. 2035년까지 한국 경제와 자산운용 시장의 성장 속도보다 기금이 더 빨리 늘어나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진다.》
국민연금은 채권 금리가 떨어지면서 주식과 부동산 벤처기업 해외자산 등에 눈을 돌려야 하지만 국민의 노후자금을 위험하게 굴릴 수도 없어 고민에 쌓여있다.
▽커지는 덩치, 막을 길이 없다=국민연금은 국내 자산운용 시장의 ‘외로운 큰 손’이다. 11월 말 현재 국민연금의 국내 채권 투자 액수는 84조6466억원. 한국 채권시장에 공식적으로 발행된 국공채와 회사채의 발행 추정 잔액 650조원의 13%를 넘는다.
특히 안정성과 수익성이 높은 국채와 지방채의 경우 전체 발행 규모가 142조원 규모인데 국민연금이 21.8%인 31조원을 들고 있다. 민간 운용사의 채권 펀드매니저들은 국민연금 때문에 국공채를 구경할 수 없다고 불만이 많다.
주식시장도 채권보다 비중은 낮지만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연금은 8조9700억원의 주식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23일 현재 거래소 시장 시가총액 348조7200억원의 2.57%다.
국민연금은 이 돈을 70여개의 고르고 고른 우량주에만 집중 투자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2.3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조국준(曺局浚) 기금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이 조금만 움직여도 시장에 충격이 오기 때문에 이제 마음대로 들고 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베이비 붐 세대가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면서 지금 제도가 유지되면 운용 기금은 11월 말 현재 110조2519억원에서 2035년 1714조4000억원(물가와 금리 상승률을 감안한 미래의 화폐가치)으로 늘어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운용 기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2년 말 15.6%에서 2035년 41.2%로 커진다.
▽농사도 사냥도 쉽지 않다=만기가 3년인 국공채 금리가 연 5%를 밑도는 저금리 시대가 정착되면서 주요 수익원인 채권 운용 수익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것도 큰 고민이다.
지금 수준의 운용수익률을 유지하려면 안정적인 채권에서 덜 버는 만큼 주식과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 더 투자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금융부문 투자 자금 가운데 주식과 채권 비중을 11월 말 7.2% 대 92.4%에서 내년 말에는 9.1% 대 89.1%가 되도록 주식 투자를 늘린다. 이에 따라 주식 투자 액수는 올해 6조6624억원에서 내년 11조6725억원으로, 채권 투자 액수는 85조2439억원에서 114조6747억원으로 각각 늘어난다.
장재하(張載河) 국민연금 주식운용팀장은 “주식에 자산의 10% 이상을 투자하면 증시의 심한 변동성에 연금자산이 노출돼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금이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벌면 당연한 것이고 증시가 내려 손해를 보면 위험한 주식에 왜 투자했느냐고 몰매를 때리는 변덕스러운 여론도 두렵다.
정인호(鄭仁鎬) 국민연금 리서치팀장은 “SK글로벌 분식회계와 카드채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아직 우리 기업과 시장은 불투명해 안심하고 투자할 주식과 채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고래여, 연못을 뛰쳐나오라=국민연금이 주식투자를 늘려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김종석(金鍾奭) 홍익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용된다는 것을 전제로 주식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외국인에게 휘둘리는 증시의 안전판 노릇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필상(李弼商) 고려대 교수는 “국민연금을 잘못 투자했다가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외국인에게 빼앗길 위험이 있다”며 “수익률이 낮더라도 안정적인 채권에 투자하면서 해외 자산이나 사회간접자본(SOC)이나 벤처기업 투자 등 새 수익원을 늘려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내년도 해외 주식과 해외 채권에 각각 6500억원과 2조7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또 올 하반기부터 SOC와 벤처투자조합 등 대체(代替)투자도 시작했다.
정석규(鄭錫奎) 국민연금 자금관리팀장은 “새 수익원에는 새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어서 조심스럽게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재룡(禹在龍)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기금 운용 체제 개혁과 인력 개발을 쉬지 않고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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