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기업들은 기업회계에 관한 한 그 어느 나라보다도 규정을 잘 지킨다고 믿어진다. 매분기 발표되는 기업 실적에 투자자들이 귀 기울이는 것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론이라는 한 에너지 업체의 규정위반 사건 이후 이 같은 믿음은 흔들리고 있다.
지금 미국은 부도기업 엔론에 관한 소식들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엔론 파장의 한 줄기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심장부를 노리면서 워싱턴 정가를 강타하고 있고, 또 다른 한 줄기는 월가를 흔들고 있다. 엔론이 지난 수년 동안 회계 장부를 조작해 온 것이 밝혀지면서 미국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또 다른 많은 기업들의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혹시 다른 기업도 그렇지 않나 하는 의혹 때문이다. 이번 주 들어서는 시장이 다시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주가가 하락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기업 회계의 투명성에 대한 우려가 악재로 거론되곤 한다. 한국에서도 파산한 기업들의 분식회계가 여러 차례 문제가 되긴 했지만 문제가 이 같이 크게 확산된 경험은 많지 않다. 기업들의 회계 조작이야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미국 증시의 엔론 파장은 ‘기업 회계에 관한 한 우등생’이라고 믿어지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탈행위이기에 충격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때마침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들의 실적발표를 앞당기고 정보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규정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증시가 상승하기 위해서는 ‘주식회사 미국’이 좀 더 투명하고 깨끗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사람 사는 사회가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또 한번 든다.
김남태<삼성증권 뉴욕법인 과장>knt@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