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세청 세무조사는 내 생각보단 조금 일렀어. (정부가) 꽤나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야.”(고 사장)
“그런데 이번에는 약발이 잘 안 먹히는 것 같지 않아요? 올해 벌써 3번째잖아.”(박 사장)
“그래, 예전에는 세무조사가 떴다 하면 시장이 바로 죽었는데 요즘은 안 그런 것 같아.”(고 사장)
간간이 울리는 전화벨이 대화를 끊어 놓는다.
“11평형도 3억원은 있어야 돼요. 그 아래로는 물건이 없어요. 네? 값이 더 뛸지 안 뛸지 누가 알겠어요.”(웃음)
둘의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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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기자 진단]황재성/길게 보라 |
고 사장의 기억 속에 있는 개포동 주공저층아파트 13평형은 1500만원부터 시작한다. 1984년경이다. 당시 전세금은 1200만원. 300만원이면 전세를 끼고 한 채를 사놓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이 아파트가 20배 이상 올랐다.
“올라도 너무 올랐어. 근데 아직도 더 오를 모양새니 너나없이 다들 강남에 집 산다고들 하지.”
한때 땅만 전문으로 거래했던 박 사장이 거들었다.
“땅값을 생각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74년 강남 땅값이 한 평에 5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000만원을 달래요. 200배가 뛰었어요.”
고 사장과 박 사장이 아파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80년대 초반. 한국 주거문화의 주류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70년대 후반 잠실에 불어닥친 아파트 열기가 압구정동과 대치동을 돌아 개포동으로 밀려왔다.
“강남구만 해도 아파트가 9만6000가구나 돼. 송파구와 서초구까지 더하면 24만가구나 되니 엄청나게 늘어난 셈이지. 그런데 아직도 집이 부족하다고들 하니….” 셈에 밝은 고 사장의 말이다.
고 사장과 박 사장은 그간 두 번의 가격 폭등기를 경험했다.
첫 번째는 89∼92년. 전세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주택난이 심각하던 때였다. 두 번째는 2000년 말 이후부터 지금까지다.
“88년 올림픽이 끝나면서 집값이 미친 듯이 올랐지. 집에 가보지도 않고 계약금만 내면 바로 다음날 1000만원이 올랐을 정도였으니.”(고 사장)
이상하게도 집값이 오를 때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많다는 게 두 사람의 일치된 의견. 고 사장이 옛날 일 한 토막을 끄집어냈다.
“한번은 대치동 아파트를 중개했는데, 아내가 남편 대신해 집을 팔았어. 그런데 잔금을 받기 전에 가격이 또 뛴 거야. 둘이서 한참을 싸웠나봐. 결국 남편이 인장을 도용했다며 아내를 고소하고 이혼까지 했지. 물론 계약도 파기됐고.”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인간사회의 이면(裏面)이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92년 이후 5개 신도시에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자 집값이 잡혔다.
한번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게 박 사장의 경험이다.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기 전에는 한 사람이 강남으로 전입하면 집을 판 강남 사람은 다시 근처에 있는 아파트를 샀어요. 그런데 수도권에서 물량이 많아지니 이 순환이 깨져버린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특정 지역의 수요가 실종된다는 것.
박 사장의 기억으로는 91년 말부터 94년까지 집값이 10% 이상 떨어졌다. 그 전에 폭등했던 강남 아파트값은 낙폭이 더 심했다.
“집값이 꼭대기에 달했을 때 산 사람들은 3년간 속앓이를 해야 했지요. 당시만 해도 집값이 떨어진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이었어요.”
이야기는 미래로 이어졌다.
고 사장이 운을 뗐다. “집값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세무조사만으로는 안정되지 않을 것 같은데.”
“공급이 늘어야 돼요. 수도권에 집을 더 지어야 집값이 잡히지요.” 92년 신도시 입주 때를 떠올리던 박 사장에겐 공급만이 최선의 대안이었다.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신도시를 하나 더 만든다고 해서 강남 수요가 분산되지는 않을 거야. 지금은 분당이나 일산 사람들이 강남으로 다시 들어온다고 하잖아.”
고 사장의 설명이 계속됐다. “차라리 교육시설을 주변으로 옮기든지, 아니면 서울 강북을 체계적으로 다시 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둘은 이번에도 딱 부러진 해답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집값에 대해서는 생각이 같음을 확인했다.
“형님, 집값이 또 뛰기는 힘들겠지요. 이제는 약세장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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