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같이 사업 해 봅시다’
마 과장이 경기 A시의 아파트 부지를 만난 건 2000년 12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50대 중반의 남자가 토지대장을 들고 왔다. 경기 A시에 땅 15만평을 갖고 있으니 아파트를 지어보자는 제의였다.
이 땅은 웬만한 건설회사라면 다 알고 있는 부지. 마 과장도 익히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아파트 5000여 가구가 들어설 대규모 부지여서 군침부터 돌았다. 이 만한 땅이라면 건설사 수주영업팀 누구나 눈독을 들일 만 하다. 단지가 크든 작든 사업추진에 들어가는 ‘공력’은 비슷하다. 오히려 단지가 클수록 규모의 경제가 있고 ‘건축쟁이’ 나름대로의 포부를 펼쳐 볼 수 있다.
문제는 사업성이었다. 빈약한 수요층에 교통, 교육여건까지 만족스러운 부분이 별로 없었다.
잘못 처리했다가는 업계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도급액수만도 4000억원에 육박해 LG건설 주택부문 1년 매출의 3분의 1과 맞먹는다.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외환위기 때도 경기 용인에서 아파트를 팔았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땅 주인과 개략적인 사업계획을 짰다. 50평형 이상 대형에 타깃을 맞췄다. 고급 주거단지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었다.
#2002년 5월 ‘3번의 반려 끝에 사업추진 결정’
지금까지는 시행사가 마 과장에게 땅을 팔았다면 이제는 마 과장이 회사에 땅을 ‘세일즈’해야 한다. 상부에 올렸다. 3번의 반려….
땅을 어떻게 포장하느냐가 문제였다.
대형건설사 영업 수주팀에는 한 달에 10건 이상의 아파트 수주사업이 접수된다. 이중 상부까지 보고되는 건 고작 한 두개. 1년이면 20여건이다. 이중에서도 사업성을 인정받아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기까지는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컨셉트를 바꿨다. 당초 대형 고급평형으로 가려던 계획을 중소평형으로 수정했다. 타깃도 서울 강북권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신혼부부와 고연령층으로 삼았다.
3개월의 거친 토론 끝에 사업추진이 결정됐다.
#2003년 3월 ‘사업승인변경 완료’
아파트 사업에서 넘어야 할 산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가운데 인허가는 가장 넘기 힘든 고비. 도급사업에서 인허가는 본래 시행사의 몫이다. 책임은 땅주인에게 있다는 이야기다. 인허가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 절차가 늦어질수록 금융비용이 늘어나 지주와 시공사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당연히 건축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시공사가 깊숙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그래도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부분은 마 과장이 직접 건설교통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5번이 넘는 시청과의 ‘접촉’ 끝에 승인을 받았지만 당초 계획보다 1개월 이상이나 늦어졌다.
#2003년 4월 ‘모델하우스는 절반의 성공’
모델하우스는 소비자들이 최종 구입 여부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 당연히 모델하우스 입지선정은 중요하다. 마 과장은 유동인구, 교통여건, 타깃층의 주거주 지역 등을 고려해 사업현장 인근 지역에 모델하우스를 열었다.
그는 “계약금을 걸어도 그 보다 몇 배의 웃돈을 준다는 업체가 있으면 하루아침에 계약이 뒤바뀔 정도로 모델하우스 입지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모델하우스 부지만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거래꾼’이 신종 직업으로 부상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분양 10일 전 ‘도우미 교육’
모델하우스와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다. 분양 첫 날부터 마지막까지 고객을 상대하는 도우미들이다. 상품 설명에서부터 청약절차, 금융혜택까지 소비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소비자와의 최후 접점이다.
이번 사업에서 마 과장은 도우미 선발에서부터 유니폼, 교육까지 일일이 챙겼다. 필요인원은 35명이지만 40여명을 뽑아 매일 8시간씩 10일간 교육 프로그램을 강행하고 있다. 칠판에 평가성적을 써놓고 ‘수업’에 소홀한 사람은 탈락시킨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칠판과 마 과장의 목소리에 눈과 귀를 집중시킨 도우미의 얼굴에는 비장함마저 묻어난다.
#최후의 심판을 앞두고
모든 준비는 끝났다. 소비자의 심판만 남았다. 분양 성과에 따라 30개월의 노력이 보상을 받느냐 버림을 받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마 과장은 “분양을 앞둔 모델하우스 소장의 머릿 속은 이중삼중으로 얽힌 실타래와 같다”면서 “하지만 이런 고민 속에서도 묘한 흥분을 느끼는 게 우리 같은 사람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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