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홈]현장에서/쾌적한 재건축 길은 있다

  • 입력 2008년 1월 17일 02시 56분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잠실 쪽으로 탄천을 건너면 한결 시원한 느낌이 든다. 고층 건물이 잔뜩 들어찬 ‘테헤란밸리’ 대신 종합운동장과 아시아선수촌공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원한 느낌은 여기까지다. 잠실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고층 건물이 사방을 가린다. 잠실주공아파트를 허문 곳에 25층 남짓한 아파트 수백 개 동(棟)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신천역과 잠실역 사이에서는 콘크리트 벽에 갇힌 느낌마저 든다. 꼭 이렇게 지어야만 했을까.

이곳 재건축 논란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 일부 서울시 공무원과 건설업체, 재건축 조합 등에서는 잠실주공아파트를 초고층으로 재건축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층수를 25층 남짓에서 40∼50층으로 높이는 대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넓히자는 주장이었다. 25층 건물을 빽빽하게 짓기보다 40층 이상 건물을 듬성듬성 지어야 쾌적하고 도시 미관에도 좋다는 논리였다.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쾌적한 초고층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 집값이 크게 오르고, 강남 부자들인 조합원(잠실주공아파트 소유자)의 배만 불린다는 이유도 있었다.

아파트 소유자들의 재산 증식을 막으려고 난개발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 삼성동 아이파크는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이 넓은 초고층 단지인 덕분에 서울 최고 수준의 아파트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투기 세력이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주거 여건을 나쁘게 만드는 것은 난센스다. 재건축 아파트 값 급등을 예상하고 미리 강력한 개발이익 환수 장치를 마련하는 건 정부의 역할이다. 제 역할을 못한 정부가 도시 미관만 망쳤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서울시는 지역에 따라 층고를 높이고 건물 수는 줄이는 형태로 재건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이런 방침에 동의하는 듯하다. 다소 늦었지만 다행이다.

다만 투기나 집값 급등은 막아야 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에서는 초고층 재건축 얘기가 나올 때마다 집값이 들썩이기도 했다. 이런 부작용을 막으려면 개발이익 환수 등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쾌적성을 떨어뜨려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정책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이은우 경제부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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