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은 낮 12시. 그런데 그는 무려 17분이나 늦었습니다.
저로서는 당연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요. 그러나 허겁지겁 나타난 그의 모습에서, 아니 이어진 그의 설명에서 오히려 그에게 감탄을 했습니다.
그는 언론사를 돌며 호주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느라 늦었던 것입니다. 호주산 생우(生牛) 도입 건이었습니다. “작년에 한국의 수입업자 2명이 호주산 생우를 도입하려다 농민과 사회단체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좌절됐지요. 이번에 다시 생우를 도입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설득하러 다닙니다.”
처음에는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답니다. 심지어 일부 축산농들은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언사까지 퍼부어 당황했다는군요. 그래도 ‘팔자’려니 하고 두 번, 세 번 꾸준히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익숙해지더랍니다. 시골에서 촌로들과 자연스럽게 술자리에서 어울리기도 하고.
이렇게 몇 달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까 아주 빠르게 한국을 알게 됐답니다. 더불어 생우도입을 반대하는 한국인의 정서까지도 진심으로 감싸 안을 수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얘기를 듣자노라니 정형화된 ‘외교관’의 모습은 찾기 어렵더군요. ‘먹느냐 먹히느냐’의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 외교관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생각도 떠오르고.
해외 생활을 하며, 또 정부부처를 출입하며 만났던 많은 한국 공무원들의 대단히 아쉬웠던 ‘소극적 역할’이 오버랩되더군요.
일부 외무부 공무원들은 해외에서 한국인들 위에 군림하며 얼마나 폼을 잡는지…. 이런 분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국민 혈세로 외국에서 근무하면 국익을 위해 불철주야로 뛰어야 할텐데 걸핏하면 한국인들끼리 만나 골프나 치고…. 물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온몸을 던져 외교전을 펼치는 한국 외교관에게는 죄송한 지적입니다만….
반병희기자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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