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취임식날 증권사의 소동

  • 입력 2003년 3월 2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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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에 담긴 국정운영 방향은 증시에 긍정적일까요, 부정적일까요. 또 신정부 출범일 부정적 의견을 내놓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요?

대통령 취임식날인 지난달 25일 이 문제로 증권가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S증권의 한 연구원이 일부 기관투자가에게 e메일로 보낸 짧은 리포트.

‘노 대통령 취임사가 주는 증시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이 리포트는 △북핵문제로 미국과 외교적 갈등을 빚을 수 있고 △대기업에 우호적인 경기부양책을 펼칠 가능성이 적다며 ‘부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몇 시간 뒤 이 내용은 한 온라인 신문에 ‘S증권이 노 대통령 취임사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S증권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새 대통령의 취임사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 회사 L상무는 해외출장 중 이 소식을 듣고 “책임자도 모르는 개인 의견이 S증권의 공식입장인 것처럼 나간 것은 잘못”이라며 국제전화로 당사자를 질책했다는군요. 결국 S증권은 애널리스트와 스트래티지스트들의 의견을 모아 ‘취임사는 경제에 긍정적’이라는 전망을 다시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달라진 이유가 뭐냐, 한 방 얻어맞고 납작 업드린 것 아니냐, ‘용비어천가’ 수준이다 등등의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증권가에서 애널리스트가 현안에 대해 코멘트하는 일은 다반사로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기도 하구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애널리스트들은 외환위기 직후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기업에 대한 부정적 투자의견이나 전망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가 비판적인 보고서를 제한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던 시기입니다. ‘소신대로 말했다가는 잡혀간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소수 의견이나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의견을 제한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요. 몇 시간만에 정반대 의견을 내놓는 증권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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