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는 틈새시장을 노렸습니다. 한국인의 식생활이 서구화되면 서구처럼 떠먹는 요구르트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측하고 프랑스의 요구르트 제조업체 요플레와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시큼하고 끈적끈적한 요플레를 상한 우유로 오해한 소비자의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반품이 이어지고 시식회에서 맛을 보고 구토를 하는 소비자까지 나왔습니다. 당시 요플레의 최대 수요자가 빙그레의 모기업인 한국화약그룹(현 한화그룹)의 구내식당일 정도로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 없는 게 기업입니다. 떠먹는 요구르트는 한국인에게 낯선 데다 요플레 값(400원)은 당시 시내버스 요금(110원)의 4배 가까운 고가였습니다. 소문을 내려면 구매력과 폭넓은 해외 경험을 가진 소비자 집단이 필요했습니다.
시장 분석을 거쳐 당시 신흥 부촌(富村)으로 떠오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을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이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무료 시식회를 여는 등 1 대 1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운도 따랐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자 서울에 몰려든 외국인들이 호텔에서 떠먹는 요구르트를 찾기 시작한 것이죠.
결국 요플레는 시장에 나온 지 6년 만에 경쟁상대를 만났습니다. 한국야쿠르트가 떠먹는 요구르트 ‘슈퍼100’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간 경쟁은 시장을 키우는 촉매 역할을 했습니다.
생산설비의 자동화, 원가 경쟁이 시작되면서 요플레는 대중적인 장수상품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983년 당시 400원이던 요플레가 지금 500원입니다. 버스비는 6배 이상 700원이 됐는데도 말이죠.
요플레는 지난해 4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30% 정도 성장했습니다. 떠먹는 요구르트 시장의 35.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악조건 속에서 잘 키운 장수상품 하나가 ‘열 아들’ 부럽지 않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죠.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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