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실세(實勢) 몇 명이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서는 필요 이상의 회의와 토론이 이어지면서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불만을 품은 공무원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5·23 주택가격 안정대책 추진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 한 토막.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 아파트값과 주상복합건물 분양권 프리미엄이 천정부지로 뛰고 연일 언론에 실태와 문제점이 보도되자 건설교통부와 재정경제부 담당부서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난해 9·4 대책 때 내놓은 정책 말고 무슨 새로운 정책이 있나 모두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후(後)분양제 같은 시책이 나왔습니다. 국세청 공무원을 대거 동원해 부동산중개업소 입회(立會)조사를 한다는 ‘코미디성 정책’도 함께 나왔지요.
그런데 5·23 대책이 발표되기 얼마 전 관련부처 공무원들은 청와대로부터 회의소집 호출을 받았습니다. 민간경제연구소 출신을 포함해 여기저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와서 각자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하고 “이제 이야기 충분히 들었으니 각자 돌아가서 정책을 만들라”는 말을 듣고 헤어졌답니다.
그래서 어떡하란 말인지? 주택정책이란 게 워낙 미묘해서 숫자 하나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번 대책만 해도 최종 발표문안이 나올 때까지 몇 차례나 수정작업이 이뤄졌습니다.
한 경제부처 공직자는 “분초를 다투며 피를 말리는데 결론이 나지 않을 회의나 소집하다니 황당했다”고 귀띔했습니다.
요즘 각 부처의 장관 차관 등 고위 간부는 각종 회의나 토론회에 참석하기 바쁩니다. 사무실보다 청사(廳舍) 밖에 있는 날이 훨씬 많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토론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생산성도 가끔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저곳 불려다니는 공무원 가운데 많은 사람이 사석에서는 “회의와 토론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좀 더 차분히 정책을 구상할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털어놓는다는 것입니다. 생산적 정부, 효율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면피성 토론, 형식적인 회의는 줄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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