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 계약이 체결되면 인수당하는 기업의 경영진은 퇴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홍 행장은 2002년 3월 행장에 취임하며 친구인 하영구(河永求) 한미은행장과 함께 ‘40대 은행장 시대’를 열었습니다. 경복고 서울대 출신으로 1976년 조흥은행에 입사해 국제부 과장과 리스크관리실장 기획부장 등을 거쳐 2001년 2월 상무로 발탁된 지 1년만에 행장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홍 행장에게는 초고속승진이 영광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속사정은 이렇습니다.
작년 봄 이근영(李瑾榮)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당시 위성복(魏聖復) 조흥은행장을 퇴임시켰습니다.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였으나, 실은 퇴직하는 금감원 간부를 조흥은행장에 앉히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위 전 행장은 이근영 위원장과의 담판에서 “내가 물러나는 대신 후임자는 조흥은행 내부인사로 해달라”며 홍 행장을 추천했고 명분에서 밀린 이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홍 행장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취임했지만 조흥은행 직원들은 여전히 이사회 회장으로 물러난 위 전 행장에게 매달렸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정부가 조흥은행을 제3자에게 팔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특히 조흥은행 노조가 ‘신한지주 매각반대’를 내걸고 파업할 때 노조는 홍 행장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단지 노조의 요구사항을 정부와 신한지주에 전달하는 ‘메신저’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홍 행장이 씁쓸하게 물러나는 날 조흥은행 노조는 “현 경영진은 106년 조흥의 역사를 훼손시킨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마땅히 사퇴해야 한다”며 홍 행장을 몰아세웠습니다.
금융계에서는 홍 행장이 상무로서 경륜을 더 쌓은 후 2005년에 행장이 됐다면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능한 인재가 주변상황에 떠밀려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가 제대로 날개 한번 펴지 못하고 추락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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