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삭발까지 해 가면서 농민의 이익을 지켰던 김 장관이 이처럼 군색한 처지에 몰릴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농촌 현실의 절박함을 보여줍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그렇습니다. 국가간 통상 교섭은 세계적 대세입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일본과 싱가포르의 FTA, 미국과 이스라엘 요르단 칠레, 호주와 뉴질랜드 등은 모두 FTA를 통해 무역 블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도 고르고 고르다 피해보다는 이익이 더 많을 것 같은 칠레를 시험용으로 삼아 FTA 체결을 시도했습니다.
반론의 여지가 있지만 한-칠레 FTA가 체결되면 10년간 무역수지가 43억달러 개선되지만 농가피해는 4억9000만달러 정도라는 게 정부측 계산입니다. 여기에 쌀 사과 배는 관세 철폐 대상에서 뺐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시설포도 재배농가 등은 사실상 경영을 포기해야 해 직접 피해액이 2조1000억원에 이른다고 계산합니다. 더구나 이들 농가가 다른 농작물을 재배하게 되면 공급 과잉으로 연쇄피해가 생겨 간접피해까지 합하면 천문학적인 손실을 볼 것이라 주장합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FTA는 국가 전체로 보면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이익이라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하지만 농민들의 ‘생존’을 담보로 한 것이지요.
예순이 넘은 농민들에게 ‘벤처농업으로 전환하라’ ‘영농규모를 확대해 경쟁력을 키우라’고 하는 것은 무의미한 헛소리일 뿐입니다.
이쯤 되면 농업문제는 경제학이 아닌 사회복지학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한국 농민들에게 경제원칙 운운하는 건 극히 일부의 기업농을 제외하고는 의미가 없습니다.
김 장관의 고민도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고 농림부를 출입하는 기자도 이 부분에서는 더 이상 합리성을 들이밀 수 없게 됩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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