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밤늦게 택시를 탔습니다. 작은 체구의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운전대를 잡고 있었습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택시를 모는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습니다.
그가 ‘일벌레’가 된 이유는 가난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북 영덕 출신인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고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교과서를 살 돈조차 없었어요. 친구 책을 빌려 보고, 신문보급소에서 먹고 자며 이를 악물었지. 나중에는 갈 곳조차 없었어.”
그는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죽과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며 꽤 알려진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못 먹은 탓에 얻은 폐결핵이 도져 학교를 포기했답니다.
병을 다스린 뒤 공무원시험에 합격했지만 상사의 비리를 덮어 쓰고 쫓겨나 30여년간 택시운전대를 잡았다고 하더군요. 운전석 옆에는 그동안 받은 모범운전자 표지가 훈장처럼 달려 있었습니다.
그는 요즘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아들이 명문대 대학원을 나와 대기업 연구소에 취직을 했으니 원을 풀었다는 거죠. 젊은 시절의 기억을 정리한 6권의 노트를 아들이 읽고 펑펑 울더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 눈물 속에서 지난 고통을 다 털어낼 수 있었을 겁니다.
미국의 사상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부자가 되는 길(The way to wealth)’이라는 글에서 게으름을 세금에 비유합니다. 시간을 빼앗아가는 게으름이 세금보다 무섭다고 했습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가난을 이겨낸 이 시대 아버지들의 삶 자체는 이보다 더 큰 교훈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아버지의 고마움’을 그동안 잊고 살았지 않나 싶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부지런한 한국인’으로 살아 온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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