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고기정/‘그랜저 일반택시’의 경제학

  • 입력 2004년 6월 20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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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놓고 논란이 분분합니다. 야당은 물론 상당수 경제전문가는 ‘위기’라고 강조합니다.

반면 대통령과 경제 부처는 이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신문사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언론 중재 신청도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달 초 급한 일로 탔던 택시에서였습니다. 택시운전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최근 ‘그랜저 일반택시’나 ‘다이너스티 일반택시’가 부쩍 늘어났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흰색으로 칠해져 있지요.

“저게 다 모범에서 내려온 거예요. 장사가 안 되니까 모범 면허 반납하고 일반택시로 전환한 겁니다.”

차량 색깔에 대해서는 검은색 모범택시의 색깔을 바꾸려면 전체를 흰색으로 도장하는 게 무난하기 때문이랍니다.

불평인지 설명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운전사의 말이 계속됐습니다.

“제 택시도 차량 가격하고 면허 비용을 포함하면 얼추 7000만원입니다. 대형차로 영업하는 모범택시는 1억원 정도이지요. 그런데 일반 중형택시도 수지를 못 맞추는 판에 모범택시 영업이 되겠어요?”

그는 하루에 15시간을 일한답니다. 말이 15시간이지 일반 직장인들이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한다면 보통 격무가 아니지요.

모범택시의 경우 1억원 짜리 ‘사업장’에서 나오는 매출이 하루에 8만원이 채 안되는데다 이것저것 빼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이 6만원에도 못 미치는 경우도 많답니다.

차에서 내릴 때쯤 그 운전사는 “작년보다 손님이 더 없다”며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된 뒤 퇴직금으로 택시를 시작했는데 이것마저도 영 시원치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국회 개원연설에서 “우리 경제가 결코 위기는 아니다”라며 “과장된 위기론이야말로 시장을 위축시키고 왜곡시킬 뿐 아니라 진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한 날이었습니다.

고기정 경제부기자 koh@do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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